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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슬픈 현실과 ‘추노’ / 백은하

등록 2010-01-22 21:34수정 2010-01-22 22:34

백은하 <10 아시아> 편집장
백은하 <10 아시아> 편집장
지난해, 1980년대로 회귀한 티브이는 그만큼 척박했고, 그 이상으로 폭력적이었다. 21세기 첫 10년의 마지막 해는 광화문을 불바다로 만든 <아이리스>의 시대착오적 세계관이 장식했고, 그 와중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선덕여왕>은 외롭고 힘겨운 독주를 끝냈다. 그리고 손석희가 사라졌다. 2010년. 시대의 성대가 손상된 새로운 10년의 시작은 <한국방송>(KBS) 드라마 <추노>가 열었다. <한성별곡-正>을 통해 정치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질문을 던졌던 곽정환 감독의 신작 <추노>는 도망간 노비를 쫓는 노비, 추노(推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24부작 드라마다.

<추노>는 병자호란 이후라는 분명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동시에 어느 시대에 위치한다 해도 상관없을, 백인백색 인물의 배치만으로도 흥미로운 텍스트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를 살아가는 각기 다른 방법들, 혹은 신념들이 여러 개의 꼭짓점을 이루고 있는 다각의 입면체. 그렇게 <추노>는 다른 사연과 다른 이상을 꿈꾸었던 여러 남자들의 대결이 주요 골격이다. 조선 최고의 무장이었지만 병자호란 이후 신분 추락으로 관노가 된 태하(오지호)와, 양반가의 자식이었지만 가문의 몰락 후 스스로 추노꾼의 삶을 선택한 대길(장혁).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이야기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추노> 안에서 대립하고 있는 것은 물론 대길과 태하만은 아니다. 6회의 마지막 장면, 그 둘 사이에 태하와 대립하는 철웅(이종혁)이 제3의 검을 들고 파고든다. 모두가 적이자 모두가 아인, 이 놀라운 삼각의 액션 신은 미장센 자체로도 아름다웠지만 흔히 선과 악으로 양분되기 마련이었던 드라마적 세계관의 편리함을 참지 못하는 젊은 제작진들의 뚝심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명장면이었다.

한회 한회 회를 더해감에 따라 20% 후반에서 30% 중반으로 가파르게 시청률을 올리고 있는 <추노>는 이미 상반기 히트상품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한 현대의 느낌을 지우고, 사라진 자연의 웅장함을 덧입히는 시지(CG)작업을 통해 <추노>는 ‘보는 드라마’로서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일찌감치 제작을 시작한 덕분에 방영 직전 <추노>는 10회 분량의 촬영을 마무리지었다. 5개월간 제작진은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극중 추노패의 추격 여정을 재현한 장면들은 다양하고 아름다운 한국의 풍광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추노로드’로 불러도 좋을 만한 절경을 뽐낸다. 거기에 마치 <매트릭스>나 <300> 같은 할리우드 영화의 촬영기법과 액션 시퀀스는 고화질텔레비전(HDTV) 시대를 맞이한 시청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성찬이다. 그리고 영화 <7급 공무원>의 시나리오를 쓴 천성일 작가 특유의 구수하고 리드미컬한 대사를 체화한 윤문식·안석환·성동일 등 연기로 승부하는 중년 남자배우들의 등장은 자칫 심각하고 무거워질 수 있는 이 수컷들의 추격전에 고삐를 조절하고 있다.

직설화법이 가로막힌 시대. 모두 ‘사극’이라는 알레고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슬프다. 노비가 노비를 쫓는 피라미드 하단의 정글 풍경은 처연하다. 하지만 <추노>는 그 슬픈 풍경 위에 피로 쓴 가장 아름답고 가장 현재적인 풍경화다.

백은하 <10 아시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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