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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주객이 전도된 사법개혁 논의 / 김종철

등록 2010-01-31 20:42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
몇몇 형사판결에 대해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이 이념 공세로 대응하면서 촉발된 사법개혁 논의가 우리법연구회를 해산하도록 대법원장을 압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처럼 통상의 사법개혁 논의를 넘어선 무절제한 정치 공세는 자유민주주의 헌법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매우 위험한 태도이다. 우리법연구회가 사법개혁의 대상이 되려면 그 목적과 활동이 헌법과 법률에 반한 것인지가 증명되어야 한다. 이런 입증이 없는 상태에서 해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오히려 사법권의 독립을 훼손하고 법관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해체를 요구하는 쪽에서는 우리법연구회가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사조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연구회가 법적 한계를 벗어난 정치적 활동을 한 사실이 없으므로 이런 주장은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 최근 판결의 배후로 이 단체를 지목하는 것은, 강기갑 의원사건와 <문화방송> ‘피디수첩’ 사건 등의 담당 판사가 이 연구회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터무니없다.

연구회가 노사·인권문제 등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들에 특별한 관심을 두어 온 것도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사회적 갈등이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 하여 법원이 외면해야 하는가. 오히려 법원의 헌법적 사명은 ‘모든’ 사안에서 인권과 민주주의가 최대한 확보되도록 재판하는 것이다. 연구회가 사법부도 외면해 왔던 인권과 민주주의 관련 난제들에 대해 헌법과 역사적 현실에 입각하여 올바른 해결을 모색하는 것은 인권보장을 추구하는 자유민주체제에서 오히려 권장되어야 할 일이지 억압받아야 할 일이 아니다.

연구회를 ‘하나회’에 비유하는 논의도 논리비약적 상징조작이다. 하나회는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군의 기강을 훼손하고 군사반란에 가담한 불법단체였다. 반면 법원은 상명하복을 금기하고 재판의 독립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기관이다. 대법원장을 비롯한 누구도 개별 법관의 재판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사법권 독립의 요체이다. 또한 독립적 재판을 위해 사실판단과 법리 분석을 위한 조사연구는 필수적이다. 결국 연구회의 연구 활동은 사법권의 적절한 행사를 위해 필수적인 법관 활동의 일부이므로 하나회와 비견될 이유가 없다.

일부는 연구회가 법관인사제도의 개혁 등 법원 민주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온 것에 대해서도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증거라고 한다. 이런 태도는 법원이 사법권의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부당한 인사제도나 재판의 독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법부 내부의 민주주의는 사법권 독립의 요체이다. 사법권 독립을 위한 민주화나 개혁 논의를 법원 내부에서 법관들이 스스로 해내지 못할 때 사법권 독립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법의 민주화를 위한 법관들의 활동을 정치적 편향성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정치적 중립성 도그마를 왜곡하여 반헌법적 관행이나 제도를 계속 유지시키고 사법부의 독립을 끊임없이 훼손하려는 정치적 저의를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법연구회 해체 논의를 통해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법원 흔들기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동기에서 출발했음이 명백해지고 있다. 만일 우리법연구회가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목적과 활동을 했다는 입증도 없이 해체된다면 그날은 우리 사법부의 독립, 나아가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가 종말을 고하는 날이 될 것이다. 주객이 전도된 사법개혁론을 바로잡는 과제가 갈 길 바쁜 2010년 대한민국에 주어진 또다른 현안이라는 사실이 우울할 뿐이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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