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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아이폰·아이패드 소란을 보며 / 김진형

등록 2010-02-02 20:05수정 2010-02-02 20:13

김진형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
김진형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




이게 웬 소란인가? 언론들이 일제히 애플이 태블릿 피시 아이패드를 출시한 것을 머리기사로 다뤘다. 어처구니가 없다. 애플은 돈 한푼 안 들이고 광고를 한 셈이다. 한국 기업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호통을 치는 매체도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더니, 아이폰 충격에 아이패드 소식만 듣고도 크게 다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제품 성격이 다르다.

‘아이폰 출시’는 애플이라는 컴퓨터회사가 기존의 사업영역을 뛰어넘어 통신회사들을 놀라게 한 사건이다. ‘휴대전화는 통신기기’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통신회사들에 컴퓨터 기술의 힘을 보여준 것이다. 아이폰은 컴퓨터다. 실제로 판매가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아이폰 하드웨어 가격에서 통신부품 비중은 전체 하드웨어 가격의 10분의 1밖에 안 된다. 아이폰을 써보니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축소하며 디지털 지도와 연계된 위성위치인식 정보를 활용하는 서비스가 훌륭하다. 통신기기로는 생각하기 힘든 서비스다.

그러나 아이패드는 다르다. 아이패드는 컴퓨터 영역에서 모델이 하나 더 출시됐다는 정도의 의미다. 혁신이 잦은 컴퓨터업계에서 늘 있는 일이다. 터치스크린을 통해 웹브라우징을 한다는 정도가 새롭지 그것 말고는 특별할 게 없고, 성공 여부도 의문이다.

아이폰은 컴퓨터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구매하여 새 기능을 추가한다. 아이폰이 놀라운 것은 콘텐츠장터인 앱스토어에서 개발자가 매출의 70%를 가져가도록 해, 개발자들을 끌어모으고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경쟁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통신사업자들의 폐쇄적 기득권이 무너지면서 개발자 중심의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있다.

미국에서 아이폰이 출시되어 각광을 받을 때 한편으로 안타까웠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하드웨어 부품과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소프트웨어 기술이 부족해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뒤 국내 업체의 제품이 출시됐지만 미국에서 ‘뛰어난 하드웨어에 끔찍한 소프트웨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아이폰의 충격은 컴퓨터 소프트웨어 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모든 산업과 제품에서 소프트웨어 생산과 관리능력이 경쟁력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전국민이 알게 됐다. 이제껏 하드웨어와 통신 중심 정책을 펼쳐온 정보통신 정책 당국자와 관련 기업들은 그 중요성을 더 절감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국내 여건은 긍정적 전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워낙 열악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대기업의 전근대적 구매 관행은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개발자들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해 컴퓨터과학 교육을 강조하기 위하여 컴퓨터과학 교육주간을 선포했다. 그즈음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컴퓨터 수업이 폐지됐다. 단순한 컴퓨터 활용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더니 그나마 사라졌다. 대학입시에서 컴퓨터공학과는 기피 학과 목록에 올라 있는 현실이다.

아이폰 충격에 대응하는 국내 대기업의 태도도 걱정스럽다. 연구소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부문을 다시 사업부서에 전진배치했다고 한다. 소프트웨어연구소를 없앴다가 복원하더니 다시 되돌아간 것이다. 소프트웨어 정책이 오락가락하니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연구원들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사장이 슈퍼 개발자를 찾고 있다고 호소해도 학생들은 외면한다. 특단의 조처가 없으면 산업체에서 우수한 소프트웨어 인력과 기술을 확보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디지털시대엔 모든 제품에서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가치가 갈수록 중요해진다.

김진형 카이스트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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