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정상회담, 올바른 선택이다. 공백의 2년 동안 불신이 쌓여 있기에, 실무회담으로 풀기 어렵다. 큰 틀에서 풀어야 작은 문제도 해결된다. 임기 3년차인 올해가 정상회담의 적절한 시기이기도 하다. 정상이 만나서 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도 지지할 만하다. 남북관계 개선이 한국의 외교적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는 인식도 올바르다. 누가 반대하겠는가? 상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추진 과정이 혼란스럽다. 정상회담을 둘러싼 말은 널뛰고, 대북정책은 달라진 것이 없다. 정상회담은 훈계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상회담에 관련된 말들은 상대인 북한보다 국내의 보수층을 향해 있다. 사실이 아닌 말들로 지난 정부와 차별하려는 자세도 지나치다. 축적된 경험을 활용해서 더 좋은 성과를 얻으면 된다. 협상은 주고받는 것이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줄 것인지, 현실적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 받을 것만 말하고, 줄 것은 없다는 태도는 협상에 나서는 자세가 아니다. 그리고 칼을 들고 대화의 장에 나설 수 없다. 대화를 하려면, 최소한 흡수통일론이나 급변사태는 내려놓고 가는 것이 옳다.
북한에 대한 자신감은 필요하다. 실제로 북한은 초조하고 다급하다. 그래서 정상회담에 적극적이다. 그것이 과거와 분명하게 다른 점이다. 그렇다고 ‘시간이 우리 편’일까? 지금은 그렇지만,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 먼저 움직일 때까지 기다린다면, 상황은 역전된다. 그리고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면 우리가 초조해진다. 지금처럼 과도한 자신감으로, 아니면 말고 식의 접근은 불신을 증폭시키고, 정작 필요할 때 불리하게 작용할 근거들이다.
정상회담을 하려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우선 대화를 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정부의 말과 행동은 음악으로 치면 잡음에 가깝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음이다. 누가 정상회담 추진의 지휘자인가? 보이지 않는다. 우선 믿을 수 있는 채널로 정리해야 한다. 비선들의 난무는 어지러운 신호의 근원이다. 정상회담 준비는 곧 간접대화다. 신뢰할 수 있는 채널을 통해 책임 있는 사전조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정부 안에서 정상회담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해야 한다. 현재 외교안보팀의 말과 행동은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자세로 보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의 신뢰다. 사진 찍고 올 것이 아니라면, 의제가 핵심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비전과 중요 정책에 대한 입장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정상회담이라면, 최소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그림을 보여주어야 한다. 여전히 돈으로 핵무기를 살 수 있다는 ‘그랜드 바겐’의 기본인식을 고집한다면, 협상이 어렵다. 6자회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몇 명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전략과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 문제는 신뢰 없이, 포괄적 남북관계 개선 없이 해결할 수 있는 현안이 아니다. 그리고 서해는? 어떻게 할 것인가? 대포를 주고받는 서해의 현실을 과연 정상회담이 외면할 수 있는가? 서해 평화정착 방안부터 마련하는 것이 순서다.
정부가 결단을 내리면, 정상회담이 가능하다. 유리할 때 해라.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의제를 관철시킬 수 있다. 그리고 정상회담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해져야 한다. 정책을 정리하고, 환경을 조성하며,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한다. 그래야 국민적 합의를 모을 수 있다. 정상회담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라. 다음주 회담에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는 것도 좋은 신호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