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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왜 문화의 지평을 스스로 좁히는가 / 태미 코 로빈스

등록 2010-02-05 20:44

태미 코 로빈스  미국 샌프란시스코예술대학 교수
태미 코 로빈스 미국 샌프란시스코예술대학 교수
2002년 방송된 <겨울연가> 이후 한국 드라마 팬이 된 나는,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받곤 한다. <선덕여왕>이 끝난 뒤, 최근엔 <에스비에스>의 아침드라마 <망설이지마>가 그런 구실을 한다. 이 드라마가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불법적 해임과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공격 등 한국의 예술, 문화 그리고 미디어 분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해석하는 기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를 복수심에 불타는 극중 주인공 장수현과 비교하는 것은 어떨까? 이명박 정부의 복수심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아래서 우파 보수주의자들이 무시되었다는 데서 연유하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장수현의 행동처럼 자기 이미지를 훼손하고, 자신을 더욱 상처받게 만들지도 모른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미디액트의 상황을 보면 그런 우려는 더욱 짙어진다.

미디액트는 한국독립영화인협회(KIFV)의 설립 제안에 의해 2002년에 만들어졌다. 2000년 개정 방송법이 시청자 생산 콘텐츠 방송을 의무화하자 이를 실행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다. 그 제안은 환상적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소통권을 기본적 인권으로서 실현하기 위해 공공자금을 지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조직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 의해 하루아침에 그런 꿈을 빼앗길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현재 42개 나라에서 항의 서명에 참여했다. 서명 참여자들이 한결같이 지적하듯이, 미디액트는 한국 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소통권, 민주주의, 그리고 미디어정책을 선도하는 데 기여해왔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조희문 신임 영화진흥위원장의 이번 결정으로 인해 한국이 더 이상 그런 구실을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독립영화인협회와 협력해온 미디액트는 그 출발점에서부터 다큐 영화로 대표되는 한국 독립영화의 전통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이런 전통은 김동원의 <상계동올림픽>(1988)과 <송환>(2004), 이창재의 <사이에서>(2006), 김명준의 <우리 학교>(2007) 그리고 지난해 새 기록을 만든 이충렬의 <워낭소리>(2008) 등에 의해 잘 대변돼왔다. 지난해 양익준의 <똥파리>(2008)에 보내준 국제사회의 따뜻한 환대도 이 전통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운영권을 보수단체에 넘긴 이번 결정을 한류와 한국 드라마 수출을 유지하기 위한 과도한 상업적 투자와 관련해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독립영화야말로 지난 10년 동안 문화상품과 관련한 한국의 지위를 높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해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일정 부분 이런 비판에 동의한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지마>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장수현을 감싸안는 한태우의 제안처럼, 조희문 위원장과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복수’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한국의 독립영화와 대중문화 모두를 옹호하고 싶다. 하지만 한가지 명백한 것은 그동안 미디어나 문화상품의 지평을 빠르게 넓혀왔던 한국이, 이제 지평을 놀랍도록 좁혀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2월2일 문화부 앞에서는 기자회견이 열려 국제사회의 청원서가 전달됐다. 청원서의 핵심은 이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번 결정이 ‘공정하고 개방적인 경쟁’이었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믿지 않으며, 미디액트의 스태프는 그 누구보다 공공미디어센터 운영에 더 적합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태미 코 로빈스 미국 샌프란시스코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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