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섭 전남 영광고 교사
정부가 바뀔 때마다 위기상황의 공교육을 살리고 사교육 억제 대책이 쏟아지고 입시전형의 다양화 계획들이 발표되지만 정작 공교육의 위기상황은 여전하다. 해방 이후 교육개혁을 표방하지 않은 정부는 없었지만 정작 목소리만 높았을 뿐 실질적인 교육개혁을 이뤄낸 정부는 없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개혁은 교육후퇴와 교육통제로 뒷걸음치며, 교육현장은 단순한 갈등을 넘어 분열과 반목,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공자나 붓다가 살아있다고 해도 오늘날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아냥이 오래된 전설이 되었지만, 이른바 ‘사회적 집단적 계륵’ 신세로 내몰린 학교교육을 방치하거나 외면할 수도 없다. 과연 계륵의 운명에서 해방시킬 방책은 없는가. 그것은 ‘교육 계륵’으로 살아남기를 바라는 요인들을 찾아 제거하는 길일 것이다.
첫째, 교육의 정치적 종속화다. 해방 이후 교육은 정치권력의 지배이념을 옹호하거나 정당화하는 정치적 도구로, 지배세력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는 정치적 종속화의 통제 대상물이었다. 따라서 교육이 백년대계라는 말은 허구이거나 우민화를 위한 정치적 술수로서 참된 의미의 교육은 기대할 수 없었다.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의 근간이 바뀌지 않은 적이 없었고, 교육은 정치적 종속화에서 상대적 자율성마저 확보하기 어려웠다.
둘째, 중등교육의 대학 식민화다. 이는 고교 교육과정이 파행을 겪고 입시학원으로 전락한 근본적 이유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의 성격과 대학개혁이 전제되지 않는 중등교육의 개혁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교육은 없고 입시만 있고, 학교는 없고 학원만 있다는 슬픈 언설은 중등교육 개혁의 본질적 한계를 시사해 준다. 입시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 역시 대학개혁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실효성 없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셋째, 지배블록의 강화와 확대재생산의 도구화다. 학교교육을 바라보는 학부모와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교육의 도구화, 학교교육의 왜곡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과거에 교육은 똑똑한 자식 하나만 잘 키우면 개인의 출세는 물론 집안의 영광까지 얻는 계층상승의 가장 유력한 도구였고, 사회적 지배계급 혹은 주류사회에 편입되는 가장 손쉬운 도구였다. 하지만 오늘날 학교교육은 지배계층의 확대재생산과 지배블록의 강화를 위한 성공적인 도구로 성질이 바뀌었다. 학부모의 편협한 ‘내새끼주의’와 학벌신화에 뿌리내린 한국 사회의 병리현상이 학교교육에 여과 없이 투영된 결과다.
넷째, 교육관료체제의 공고화와 보수화다. 교육의 경직성과 폐쇄성은 학교교육의 창의성과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권위주의적 교육관료체제가 바로 그렇다. 이는 명령과 통제로 교사를 수동적인 존재로 범주화시키고 기능적 업무의 헌신성과 숙련도를 강화하는 체제로 작동함으로써 교사 교육활동의 창의성을 제한하는 일상적 장벽이다. 특히 교육관료체제의 정점에 있는 교과부는 교사를 교육 주체가 아니라 교육개혁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현실에서 공교육의 책임성은 떨어지고 교육의 미래지향성이 약화되면서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학교교육이 교육 외적 요인들의 강력한 힘에 의해 정치적 자율성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교육의 왜곡과 도구화를 심화시킬 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자주 바뀌는 혼란의 근본 이유이기도 하다. 교육문제의 본질적 해결은 공교육을 옥죄며 온갖 형태의 위력을 발휘하는 악령적 좀비들을 제거하거나 개혁하려는 국민적 여론 형성에 있다.
박명섭 전남 영광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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