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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언론이 설 자리는 어디일까 / 신기섭

등록 2010-02-08 19:33

신기섭 논설위원
신기섭 논설위원
몇년 전 영어권의 언론학계 동향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막연히 생각한 것과 꽤 달랐는데, 특히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강했다. 2001년 9월11일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 때부터 미국의 이라크 침공까지를 다룬 언론 보도가 불신의 주범이었다. “언론이 어쩌다 이렇게 정부에 놀아나게 됐나”라는 개탄이 넘쳐났다. 언론이 미국과 영국 정부의 근거없는 주장이나 왜곡을 걸러내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했다는 지적이다. 지금의 언론 구조가 독자의 알 권리에 기여할 수 있는가라는 학자들의 물음은 기대할 게 없다는 비관적인 답변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영어권 언론의 구조적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된 것이다. 에드워드 허먼과 노엄 촘스키는 1988년에 낸 책 <여론조작>에서 ‘프로파간다 모델’을 제시했다. 두 학자는, 언론이 지배계층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되는 원인으로 5가지를 꼽았다. 첫째 몇몇 기업이 언론을 장악하는 소유 집중화, 둘째 높은 광고 의존도, 셋째 정부와 기업이 제공하는 자료에 지나치게 의존해 기사를 쓰는 관행, 넷째 압력단체의 영향, 다섯째 반공 의식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영어권 학자들이 이 틀을 바탕으로 2000년대 언론을 분석하는 걸 보면서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언론 문제의 원인도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허먼과 촘스키가 책을 쓴 1980년대 말은, 언론이 정보 흐름을 지배할 수 있던 때다. 일반 시민이 다른 목소리를 접할 통로는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니 언론의 문제점도 널리 인식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언론이 외면하는 정보들이 훨씬 쉽게 퍼져 나가고 있다. 그만큼 언론의 문제점은 쉽게 노출되고, 이와 함께 신뢰도 잃고 있다. 최근 많이 거론되는 신문의 위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위기의 원인은 여러가지겠지만, 신문이 독자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고도 독자의 사랑을 받기는 어렵다. 신문이 기득권층의 대변자라면, 독자들이 신문을 볼 이유는 별로 없게 된다.

한국에서 독자의 관심사와 언론 보도의 괴리감이 심하게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사건이 아닌가 싶다. 조작 의혹이 속속 제기되는 동안 언론은 거의 침묵했고, 도저히 보도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가서도 대다수 언론은 제기되는 문제들을 단순 전달하는 데 그쳤다. 그리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논란이 벌어졌을 때는, 사태가 괴리감 정도가 아니라 대결로 발전했다. 주류 언론은 독자들의 불안감을 외면하는 수준을 넘어 독자들과 맞서 싸웠다. 인터넷 등을 통해 쏟아지는 온갖 의혹을 파헤치려 하기보다는 괴담으로 치부하면서 시민들의 입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언론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는 사건은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다. 대다수 언론이 김용철 변호사가 쓴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철저히 외면한 가운데 책 광고 게재도 거부당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개인들이 나서고 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블로그에 책 광고를 올리고, 어떤 이들은 트위터 따위를 통해 입소문을 내고 있다. 이 덕분인지 이 책은 광고 한번 없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게다가 어제는 엄기영 <문화방송> 사장이 방송문화진흥회의 개입에 항의해 사퇴하는 일까지 생겼다. 이 지경까지 오고 보니, 한국에서 언론의 자리는 도대체 어딘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어차피 그동안도 대다수 언론이 힘없는 이들의 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기엔 사태가 너무 심각한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신기섭 논설위원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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