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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방문진을 어떻게 할 것인가? / 성한표

등록 2010-02-09 21:09

성한표  언론인
성한표 언론인
“문화방송 이사 선임권은 방송문화진흥회가 갖고 있습니다. 다만 사장이 추천하는 사람을 고려할 수 있다, 그 정도입니다.”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일방적인 본부장 인사 단행과 이에 항의하는 엄기영 사장의 사퇴 등 폭풍에 휘말린 문화방송 사태에 대한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의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 과거의 방문진 이사회가 지켜온 ‘사장이 추천한 이사진(본부장)을 추인하는’ 관행은 무시해도 좋단 말인가?

1988년 방문진을 설립하여 문화방송의 대주주 권한을 맡긴 방송문화진흥회법과 방문진 정관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방문진의 업무를 규정한 법 5조2항은 방문진이 문화방송의 ‘경영에 대한 관리 및 감독’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관리 및 감독의 범위는 방문진 이사회의 기능을 규정한 10조에서 문화방송의 공적 책임, 기본운영계획, 결산 승인, 경영평가 및 공표, 정관 변경 승인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 의결하도록 구체화했다. 법과 정관 어디에도 문화방송의 이사진을 선임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다.

이와 같은 법과 정관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는 것은 방문진 이사회의 몫이지만, 여기에는 사회적 합의를 반영한 법의 정신이라는 기준이 있다. 방문진법과 정관의 정신은 방문진에 대주주의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방송사의 자율성은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임은 물론이다. 이 정신에 따라 사장만을 방문진이 선임하고 본부장 이하 임직원의 인사권은 선출된 사장에게 사실상 일임하는 관행이 확립된 것이다.

방문진 이사진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보면 이런 관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방문진법 6조4항은 ‘이사는 방송에 관한 전문성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각 분야의 대표성이 아니라 국회 교섭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되며 임명권자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부기관이다. 본부장 인사의 일방적인 강행 사태를 일으킨 현 방문진 이사 9명 중 친정권으로 분류되는 이사가 김 이사장을 포함하여 6명에 달한다. 이와 같은 구성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과거의 방문진 이사회는 자신의 권한에 대한 확대해석을 자제해 왔다.

김 이사장으로 대표되는 이번 방문진 이사회는 과거의 관행을 깨고, 야당 쪽 세 이사가 불참한 가운데 나머지 이사 6명의 손으로 본부장 선임을 일방적으로 감행했다. 과거의 방문진은 자신의 권한에 대한 법과 정관의 규정을 법 정신에 따라 해석함으로써 태생적 한계가 크게 부각되지 않은 채 존립을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이제 방문진은 정권의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자제력을 잃고 무리수까지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태생적 한계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방문진의 문제를 정면으로 논의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사회의 구성을 정당들이 나눠 차지하는, 법 정신에 위배되는 ‘관행’은 깨고, 방송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사회가 지켜왔던 권한행사 자제의 ‘관행’은 강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논의해야 한다. 방문진 이사회의 자체성찰도 필요하다. 정권의 사랑을 받으려다 국민의 사랑을 잃게 되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야 한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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