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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방송인 스스로 독립 지켜야 / 권혁남

등록 2010-02-10 20:27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끝내 <문화방송>(MBC) 엄기영 사장이 사퇴했다. 문화방송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와 위험한 동거를 해오던 엄 사장이 결국 제 임기를 채우지도 못하고 쫓겨난 것이다. 엠비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거세게 몰아붙인 방송계 숙청과 장악 작업은 대단원의 막을 내릴 모양이다. <와이티엔>(YTN), <한국방송>(KBS) 장악에 이어 눈엣가시였던 문화방송마저 손에 쥐게 되었다. 여기에 올해 안으로 조중동에 종합편성채널을 넘겨주게 되면 현 정권이 그려온 원대한 시나리오가 완성될 것이다.

아무래도 이번 문화방송 사태는 간단치 않다. 그동안 비교적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소수자 보호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던 문화방송마저 권력에 장악된다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정권이 양대 공영방송인 한국방송과 문화방송을 장악하여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다른 정파나 집단은 여론 형성 과정에서 배제되는 여론독점 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조중동이라는 막강한 신문권력의 등에 올라타고 있는 현 정권이 방송권력마저 장악하게 되면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이 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고 독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과거 역사를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우리 국민들로서는 여간 걱정이 아니다.

이미 한국방송은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많다. 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가 지난 1월25일부터 31일까지의 ‘뉴스 9’를 분석한 보고서가 좋은 증거물이다. 분석결과를 보면 7일 중 무려 4일에 걸쳐 이명박 대통령 관련 기사가 톱뉴스로 보도되었고 현 정권에 불리한 뉴스는 내보내지 않거나 단신으로 축소해 보도하는 일이 잦은 것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다.

우리와 비슷하게 언론을 완전 장악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대한 방송사의 충성경쟁이 빚은 일화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유엔총회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총회장이 텅 빈 모양새가 영 걸렸던 모양이다. 그러자 이를 중계방송하던 이탈리아 국영방송이 텅 빈 총회장을 내보내는 대신에 유엔 사무총장 연설을 경청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총회장 장면을 조작편집 방송해 큰 문제가 되었던 일이 있다. 이런 일화가 앞으로 우리 방송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지난해 언론재단 조사에서 기자들의 31.1%가 언론자유를 직간접으로 제한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정부나 정치권력’을 꼽았다. 이보다 2년 전인 노무현 정권 때 조사에서는 ‘정부나 정치권력’ 요인이 14.7%에 그쳤던 점과 비교한다면 현 정권의 언론간섭이 매우 심해졌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09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175개국 가운데 69위를 기록해 전년보다 무려 22계단이나 떨어졌다.

이번 문화방송 사태를 계기로 방송인들은 부끄럽고 굴욕적인 과거를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1987년 6월항쟁 당시 국민들은 한국방송 시청료 거부운동을 펼쳤으며 문화방송은 취재차량이 시민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 굴욕을 씻어내기 위해 방송인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국민에게 사과방송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 노력의 결과로 잠시나마 쌓아올린 국민적 신뢰도가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당시의 굴욕을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방송인들이 스스로 방송 독립을 지켜야 한다. 방송인들의 진정성은 국민들을 감동시킬 것이며, 그 감동은 방송 독립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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