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고전, 내 안의 ‘자연’ 혹은 ‘아바타’ / 고미숙

등록 2010-02-12 16:59수정 2010-02-12 17:54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 고전평론가
새해 첫날 <아바타>를 봤다. 꼭 입체(3D)로 봐야 한다는 후배들의 협박(?)을 뿌리치고 그냥 보통 극장에서 봤다. 예상대로 재미있었다. 감동은? 일단 유보하자. 외국에선 자연주의를 조장한다, 군산복합체에 대한 도전이다 등의 논란이 있다고 한다. 한데, 나는 좀 엉뚱한 차원에서 유감스러웠다. 일단 평면으로 보는데도 스펙터클이 과도했다. <토탈리콜>이나 <블레이드 러너> 같은 에스에프(SF)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입체화면으로 봐야 한다는데도 동의할 수 있었을 거고. 그런데 주제가 자연과의 합일이고 인디언 문화의 복원이었다. 그렇다면 심각하게 ‘오버’다. 그 주제에 부응하자면 그렇게 장면들이 ‘과잉결정’되어선 곤란하다. 3D, 4D로 감각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인간도 자연이다. 자연에 대한 영화를 보면서 인간 안에 있는 ‘자연’을 손상시켜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짜릿한 황홀경에는 당연히 정기가 소모된다. 만약 입체화면으로 본다면 몸의 정서적 균형이 상당히 깨질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를 본 관객들이 각종 부작용에 시달린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다 영상의 과잉이 초래한 결과다. 요컨대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자연을 느낀 것이 아니라, 인공의 유토피아를 경험한다. 그래서 에콜로지가 아니라, 문명의 위대한 진보를 확인하게 된다. 결국 이 영화는 주제는 자연인데 영상은 인공의 극치인, 존재 자체가 역설인 영화다.

고전의 지혜가 필요한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다. 고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나의 공통된 지반이 있다. ‘인간과 우주의 비전 탐구’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동양의 고전은 인간과 자연의 합일이라는 대전제하에서 모든 사유가 전개된다. 주지하듯 현대에 들어서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모든 네트워크는 단절되었다. 그 소외와 단절은 다시 몸 안으로 들어와 삶을 갉아먹는다. 어떻게 해야 출구를 찾을 수 있을까? 고전이 바로 그 해답이다. 고전과의 접속을 통해 자연과의 합일을, 아니, 인간 또한 자연임을 깨쳐야 한다.

따지고 보면 고전과 접속하는 일이야말로 문명의 진정한 혜택이다. 근대 이전에는 책을 접할 기회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불경을 얻기 위해 서역만리까지 ‘죽음의 대장정’을 해야 했던 혜초나 삼장법사 등을 떠올려 보라.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불경과 성경, 논어 등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이 도처에 널려 있다. 이보다 더 강력한 문명의 징표가 어디 있으랴! 한데, 사람들은 이 혜택을 누리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삶이 왜 이토록 외롭고 쓸쓸하냐며 심리상담소나 정신과병원을 찾아다닌다. -지독한 역설 혹은 끔찍한 아이러니! 내가 아바타의 황홀경에 무작정 몰입할 수 없었던 것도 이 비슷한 맥락이다.

듣자하니 <아바타>가 역대 최고 흥행작이라고 한다. 이 기록을 통해 인류가 다시 자연과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꿈꾸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영상의 스펙터클에 도취된 평은 많이 보았지만, 주제 자체를 깊이 음미하는 경우는 별반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진정 그 에콜로지적 감동을 삶으로 잇고 싶다면, 부디 고전의 지혜와 접속하기를. 그 접속에 성공하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아바타 혹은 자연은 바로 내 안에 있음을.

고미숙 고전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