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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베이징에서] 중국 신세대, 악당 ‘조화사회’를 겨누다 / 박민희

등록 2010-02-15 22:05수정 2010-02-17 10:32

박민희 특파원
박민희 특파원
“녹색마왕이 인터넷의 모든 정보를 통제하려는 작전을 시작했다.” 중국 인터넷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인터넷 중독 전쟁>은 이런 대사와 함께 시작된다. 100여명의 누리꾼(네티즌)이 협력해 제작비 한푼 들이지 않고 만든 어설픈 화면의 이 애니메이션은 정부의 인터넷 검열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당국의 아픈 곳을 쿡쿡 찔러댄다. 온라인에 등장한 지 열흘 만에 이미 수백만의 누리꾼이 이 영화를 보고 열광하는 이유다.

영화 속 악당은 허셰(核諧), 중국 정부의 구호인 ‘허셰(和諧·조화)사회’를 한자만 바꿔 비꼰 이름이다. 허셰는 녹색마왕(뤼바)을 보내 인터넷 통제에 나서는데, 지난해 중국 정부가 자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컴퓨터에 그린댐(중국명 뤼바)이라는 프로그램을 강제로 장착하게 했던 정책을 풍자한다. 주인공 칸니메이는 누리꾼들을 향해 호소한다. “모두 손을 높이 들어라, 당신들의 힘이 필요하다. 그들이 유튜브를 막았을 때 당신은 손을 들지 않았고 트위터를 봉쇄했을 때도 손을 들지 않았다. 우리는 힘없는 서민이지만 손을 높이 올려 나에게 힘을 전해 달라”고. 화면상에 작은 불꽃들이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하고, 칸니메이는 곧 거대한 불덩이로 변한 이 에너지로 악당을 물리친다. 서민들의 작은 힘이 모여 악당의 통제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면서 누리꾼들은 감동한다. 인기 사이트인 투더우에는 이 영화를 본 뒤 “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됐다. 이 빌어먹을 사회는 권력을 쥔 자들의 놀이터다. 우리는 구호를 외친 뒤 묵묵히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글도 올라와 있다. 영화 속 곳곳에는 상하이시 정부가 벌금 수입을 올리려고 서민들을 상대로 함정단속을 벌인 일, 멜라민 오염 분유사건, 스포츠카를 몰던 부유층 2세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청년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 등에 대한 풍자도 담겨 있다.

중국 지도자들이 이 영화를 봤다면 무엇을 느낄지 궁금해진다. 중국 정부의 사회 통제는 강력하지만, 사회의 모순에 침묵하지 않는 신세대들, 3억8400만 누리꾼의 압력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바링허우(80년대 이후 출생자), 주링허우(90년대 이후 출생자)로 불리는 중국 신세대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뭉치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터넷 통제, 부동산 폭등과 관리들의 부정부패, 빈부격차에 대해 때로는 발랄하게, 때로는 무시무시한 분노로 비판한다. 강력한 민족주의로 무장한 이들은 때로 서방이나 한국에 분노의 총구를 겨누기도 한다.

중국 정부는 최근 누리꾼들과 숨가쁜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대대적인 ‘음란사이트 단속 캠페인’을 벌여 13만6000여개의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했다. 이 중 음란물과 관련된 것은 1만6000여개뿐이고 나머지는 당국에 등록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폐쇄됐다.

최근 한창푸 중국 농업부장이 <인민일보>에 쓴 ‘90허우 농민공에 대하여’라는 글에는 대담한 신세대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고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과거에 농촌에서 도시에 와 3D 업종에 종사한 농민공들은 온갖 차별을 받으면서도 경제발전의 가장 밑바닥에서 묵묵히 일하다가 일자리를 잃으면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90허우’ 신세대 농민공들은 과거 세대보다 교육 수준이 높고 3D 업종을 기피하고 인터넷에 익숙하고 평등의식이 강해 정치적 권리 요구도 서슴지 않으므로 적절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국제적으로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중국 정부가 국제정치의 체스판을 바꾸고 있다는 말이 나오지만, 국내에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신세대가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성장하고 있다.

박민희 특파원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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