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찬 영산대 대외교류처장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 연말, ‘한글의 나라’ 대한민국을 찾은 귀한 손님들의 방문이 화제가 되었다. 종족 언어 보존을 위해 한글을 공식 문자로 채택한 인도네시아 소수종족 찌아찌아족 대표단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들은 서울에 머물면서 세종대왕의 업적과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한글의 메카 공간 ‘세종이야기’를 관람하고 서울시내 우수학교를 견학하는 한편, 광화문광장에서 썰매를 타는 등 한글의 나라인 한국에서 색다른 겨울체험을 하였다. 이들의 방한 일정을 준비한 서울시와 훈민정음학회는 시장이 직접 나서서 대표단을 안내하는 등 대대적인 환영으로 손님맞이에 성의를 아끼지 않았다. 신문과 방송 등 언론들 역시 “찌아찌아족 ‘한글나라’ 서울 첫 나들이”, “찌아찌아족, 한글의 모국 한국 찾다!”, “세종대왕 만난 찌아찌아족” 등으로 이들의 방한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보도들의 요지는 대부분 찌아찌아족에의 한글 보급으로 우리 문자체계의 우수성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거나, 문자가 없어 자기 언어 보존에 어려움을 겪던 인도네시아의 소수부족에게 자기 문화 보존의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였다와 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환영하는 일색이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를 전공하는 지역연구학자로서 필자는 한글의 수출을 무조건 환영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국가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세계화의 세기를 맞아 영어가 세계 언어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면서 한때 우리 사회에서도 영어공용어화 논란이 뜨겁게 진행된 적이 있다. 당시 우리 국어학계에서는 우리 문화의 요체인 한국어의 자주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로 영어공용어화를 반대했다. 그렇다면 거꾸로 입장을 바꾸어 인도네시아 국민과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우리 문자를 보급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우리 정부나 관련 기관·단체들이 찌아찌아족의 한글 채택을 또다른 측면에서의 한류 열풍으로 기대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신중하게 고려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나아가 이것이 과연 국가간 관계에서 바람직한 정책방향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상대국의 정서를 도외시한 채 우리의 문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알리려는 무리한 접근방식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견제와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반(反)한류, 항(抗)한류, 혐(嫌)한류로 이어졌던 경험을 갖고 있다. 한반도 면적의 9배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로 1만7000여개의 섬에 360여 종족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는 종족분열로 인한 사회통합 문제가 가장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되고 있는 나라이다. 인도네시아가 ‘다양성 속의 통일’을 국가 프레이즈로 정하고 ‘하나의 국어, 하나의 국가’를 금과옥조와 같이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국어는 곧 다양한 종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이다. 인도네시아는 자국어인 바하사 인도네시아와 이를 표기하기 위한 알파벳 로마자를 공식 채택하고 있으며, 찌아찌아족은 엄연한 인도네시아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글 세계화를 반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것이 우리가 의도하는 바와 달리 국가간 내정간섭 문제로 비화하거나 문화적 침탈로 오해받을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과 한국어의 우수성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노력은 지속하되 상대국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제안한다. 이경찬 영산대 대외교류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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