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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3·1정신과 민족 양심 / 배태영

등록 2010-02-28 21:50

배태영  경희대 명예교수
배태영 경희대 명예교수
1919년 3월1일, 고종 황제의 국장일을 이틀 앞둔 날, 이른 아침부터 파고다공원에는 수많은 학생과 성인들의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모두가 긴장한 가운데 무슨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팔각정 단상에는 9년 전 한일 강제합병 이래 처음 보는 대형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드디어 정오를 알리는 오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청년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품속에서 독립선언서를 꺼냈다. “우리는 여기에 우리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국민인 것을 선언하노라.” 또박또박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독립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아아 새 하늘과 새 땅이 눈앞에 펼쳐지누나. 힘의 시대는 가고 도의의 시대가 오누나…” 낭독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기 모여 있던 수많은 군중이 모두가 한목소리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다. 그곳에 모였단 학생들은 성난 파도처럼 고종 황제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덕수궁을 향해 돌진했다. 대한문에는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칼을 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물밀듯이 질주하는 학생들을 당해내지 못했다.

3·1운동은 순수하게 민초들이 일으킨 풀뿌리의 운동이요, 이름 없이 묻혀 있던 씨알들의 외침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맨주먹으로 민족의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스스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죽기 위해 앞장섰던 진리의 수호자였다. 3·1운동이야말로 자유와 진리를 위한 양심의 발로로 폭발된 양심의 선언이었다.

“사람된 양심의 발로로 말미암은… 겨레의 양심과 나라의 도의가 짓눌려… 시대의 양심이 정의의 군대가 되고… 엄숙한 양심의 명령에 따라…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고…”

그런데 3·1운동의 선열들이 그렇게도 강조하며 내세웠던 그 민족의 양심은 어디로 증발하고 우리는 지금 매몰찬 이기심과 허황된 공명심과 겨레에 대한 어이없는 무관심으로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었다. 그날의 소원이 일본 제국주의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자주독립이었다면, 우늘의 사명은 미·소 패권주의의 음모로 분단된 조국의 자주통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의 메아리는 사라진 지 오래고, 통일의 의지는 눈을 닦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어쩌면 통일이 갑자기 올지도 모르니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잠꼬대요,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기와 강경과 분열뿐이다. 이 모두가 양심을 잃은 탓이다. 민족의 양심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비극>을 쓴 프리드리히 마이네케는 독일이 양차 대전에서 패한 것은 그들이 권력을 추구하기 위해서 양심을 거부하고 진리에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3·1정신을 받들어 민족의 양심을 되살리자. 한일합병이 이 겨레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었듯, 남북 분단도 우리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다. 그때는 우리에게 힘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힘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다. 양심의 문제이다.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통일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자.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북한의 위기는 하나님이 주신 남한의 기회다. 체제의 우월성을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자. 남아돌아서 농민을 울리고 농토를 황폐하게 하는 그 쌀을 막걸리로 돌려서 휘청거리지 말고 허기져 있는 북한의 형제에게 보내자. 오기를 버리고 감동을 안겨주자. 84년 여름에 남쪽이 대수재를 입었을 때 북쪽에서 725대분의 쌀과 옷을 보내준 것을 기억하라. 통일은 통일 의지가 더 강한 편의 페이스대로 이루어진다. 양심의 문을 활짝 열고 통일의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르자. 통일의 깃발을 하늘 높이 휘날리자.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고 진리가 우리와 함께 전진하나니…”

배태영 경희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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