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영화 〈박치기〉는 1968년 교토의 조선고급학교와 일본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의 충돌을 배경으로 강제연행 차별 문제를 다룬 수작이다. 한 일본인 평론가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 보나마나 조선인일 것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는 달리 이즈쓰 가즈유키 감독을 비롯해 주요 배우들은 모두 일본인이다. 일본에서는 개봉된 2005년도 영화상을 휩쓰는 등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조선학교가 갑자기 일본 사회의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하토야마 정권은 올해부터 고교교육을 무상화하기로 하고 국회에 법안을 제출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사립학교 재학생은 연간 약 12만엔의 취학지원금을 받는다. 법안은 고교나 고등전문학교 외에 전수학교 각종학교도 조건부로 지원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나카이 히로시 국가공안위원장 겸 납치문제 담당장관이 주무부처인 문부과학성에 각종학교에 해당하는 조선학교를 지원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제동을 걸고 나섰다. 조선학교를 북한 학교와 동일시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문부과학성은 법이 통과되면 각종학교의 지원 기준을 정한다는 방침인데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도 지원 대상에서 빼는 쪽에 무게가 쏠린 발언을 했다. 일본의 동포 대상 학교는 민단계보다 총련계 학교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남쪽이 재일동포들의 2세 교육에 아무 관심이 없었을 때 북쪽이 대대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원래 조선학교는 남과 북의 구분이 없었다. 일제가 패망한 직후 동포들은 빼앗긴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사할린과 일본의 전역에서 학교를 세웠다. 조선학교의 존재는 동포사회의 자랑거리이자 차별을 이겨내려는 교두보이기도 했다. 조선학교는 40년대 말 점령군사령부가 재일조선인연맹(조련)이 좌경세력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는 이유로 해체명령을 내리면서 조련 산하의 학교들도 문을 닫도록 해 존폐위기에 몰렸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주권을 회복한 일본 정부는 민족교육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동포 활동가들은 이 시기 남쪽의 자세를 ‘기민정책’이라고 규정한다. 재외국민을 버렸다는 뜻으로 붙인 말이다. 5·16 쿠데타 세력의 한 핵심 인사는 한-일 협상을 벌일 때 동포들을 “얼마 있으면 다 일본에 귀화할 사람들”이라고 비하했다. 남과 달리 북은 동포들의 2세 교육을 지원한다며 총련에 거액의 돈을 보냈다.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시기의 북이 재정적 도움을 준 점에 대해서는 북을 신랄히 비판하는 동포들조차 높이 평가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깡그리 무시하고 북한식 세뇌교육을 시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온당한 비판이 아니다. 그럼 조선학교에 자식을 보내는 사람은 총련의 열성적 활동가뿐일까? 그렇지 않다. 정확한 비율이야 알 수 없지만 민단 쪽 동포들도 상당히 많다.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서러움을 뼈저리게 겪었던 동포들은 2세를 조선학교의 초급 또는 중등과정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동포와 일본인이 짝을 이룬 국제결혼 가정에서는 2명의 아이를 조선학교와 일본학교에 나눠서 취학시키는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지난해 여름 역사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민주당 정권이 조선학교 차별을 검토하는 것은 속 좁은 짓이다. 우애를 자신의 정치이념으로 선전해온 하토야마 총리가 우익의 전유물이었던 조선학교 이지메에 가담하려는 것 같아 대단히 실망스럽다. 노래 ‘임진강’ 보급에 앞장섰고 <박치기>의 음악감독을 했던 가토 가즈히코는 지난해 10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조선학교 논란을 들으면 지하에서 통곡할 것 같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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