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섭 논설위원
김연아 선수가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인터넷에는 어떤 유명 시인이 썼다는 축하시가 화제와 논란을 불렀다. 김 선수를 대한민국과 동일시하며 칭송한 시였는데, 어떤 신문이 이를 지면에 실었다. 또다른 유명 시인이 김 선수를 대한민국의 딸로 묘사한 시는 또다른 신문을 장식했다. 유명 시인들까지 이렇게 흥분하는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 나라가 김 선수를 영웅으로 칭송하는 게 그에게 또다른 부담을 지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트위터에서 대화하는 ‘친구’ 한 명은 쇼트프로그램에서 김 선수가 신기록을 낸 직후 이런 글을 썼다. “정말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부디 금메달 따버리고, 이 무거운 기대와 부담을 더 이상은 안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다른 트위터 친구는 비슷한 시간에 이렇게 썼다. “아사다 마오는 얼마나 힘들까? 한-일 관계 속에, 라이벌 경쟁에 치여 항상 갖는 그 부담감이 말이다. 경기를 마치고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의 행복한 한 인간으로 지내길 바란다. 그렇게 살 수 있게 해주길….” 프리스케이팅을 마치자마자 김연아 선수가 우는 모습을 보면서, 트위터 친구가 말한 ‘부담’이 떠올랐다. 그 눈물에는 많은 사연이 담겨 있겠지만 분명 온 국민의 기대라는 부담감도 눈물 속에서 함께 녹아내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죽했으면 미국과 유럽 방송들이 경기를 중계하면서, 김 선수가 큰 부담감 속에 경기를 치른다고 언급했을까. 경기 뒤 통곡에 가까운 눈물을 흘린 아사다 선수도 아마 비슷한 부담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걸 누가 탓하겠는가. 다만 그가 ‘국위를 만방에 떨친 자랑스런 대한의 딸’이라는 식으로까지 치켜세우는 건 민망하다. 열광하는 사람 대부분은 그가 왜 최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인지, 그 진면목을 잘 모르는데 말이다. 미국 신문은 그의 점프를 분석하는데 한국 신문은 그의 몸매를 분석한다는 어떤 트위터 사용자의 탄식만큼 현재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그나마 김 선수는 대회 전부터 주목받았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렇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메달을 14개나 땄다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다. 이는 젊은이들의 힘과 의지, 잠재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운동선수들 이야기만은 아니다. 시각을 조금 넓혀보면, 이 땅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발랄하고 자유로우며, 무한한 잠재력이라는 씨앗을 품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 발랄함과 자유로움을 억누르지 않고 각자 나름의 가능성을 실현시켜 가도록 돕는 게 기성세대의 몫이다. 부담이나 잔뜩 줄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에 가깝다. 부모의 불안을 먹고사는 학원들의 농간 속에 무지막지한 ‘선행학습’으로 아이들의 기를 죽인다. 학교폭력이라는 괴물도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을 “부모와 교사의 폭력에 길들여진 아이들끼리의 자학행위”에 가깝다고 지적하지만, 어른들은 들은 척하지 않는다. 이뿐 아니다. 대학까지 나와도 일자리가 없는데, ‘자기계발’을 통해 알아서 먹고살라고만 한다. 그나마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해도 보금자리 하나 구하기 어렵다. 그러니 결혼해서 아이 낳아 키우기를 한참 미루기 일쑤다. 어떤 대학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미래 세대에 크나큰 죄를 짓는 것”이다. 더는 죄를 짓지 않으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사실 막막하지만, 적어도 이 현실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야 하지 않을까.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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