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시대정신 이사장
필자는 지지난해의 정권교체 이후 국민통합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시대적 과제가 국민통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정부도 이 과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회통합위원회’를 출범시켰으며, 시민운동 차원에서도 곳곳에서 국민통합 운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필자의 시대인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아서 기쁘기 짝이 없다. 그러면 왜 정권교체를 국민통합 운동의 출발점으로 잡았는가. 이것은 필자의 주관적 판단이기는 하지만, 정권교체로 한국의 국가적 정당성이 제대로 인식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보수정권은, 건국과 산업화 세력이 주축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존립과 집권의 근거를 한국의 국가적 정당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국가적 정당성에 대한 인식이 우리의 현대사적 과제설정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는 지난 진보정권의 국정방향 설정에서 더욱 뚜렷이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음에도 ‘한국 현대사는 정의가 실패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인식하였으며, 그 때문에 그를 계승하고자 한 대통령후보군들도 한결같이 개성공단에서 한국의 미래를 발견하려고 했던 것이다. 정말 개성공단에 한국의 미래가 있을까. 여기에서 명백히 보이는 바이지만,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당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서는 보수정당이든 진보정당이든 제대로 된 국정방향을 설정할 수가 없다. 현재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달성된 모범적인 국가이다. 대한민국이 본래 ‘분단국가’, ‘종속국가’ 및 ‘권위주의 국가’로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오늘날 모범적인 국가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 없이는 제대로 된 국정방향의 설정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국민통합 운동은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당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만약 현재 우리의 선진화 과제가 민주주의의 심화라고 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 틀 속에서 실현될 수밖에 없다. 만약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 틀을 부정한다면, 민주주의가 어디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 아직도 김정일과 합작하여 더 좋은 민주주의가 한반도에서 실현될 수 있다고 꿈꾸는 자들이 있기는 하다. 통일의 과제도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당성을 토대로 해야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현재 북한은 자력으로는 소생할 수 없는 위기에 빠져 있다. 북한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가 필수적이다. 첫째는 한국으로부터의 막대한 원조이고, 둘째는 개혁·개방이다. 사즉생의 각오만 있다면, 김정일 정권하에서도 국가재건의 길은 있다. 북한의 연착륙은 남북 상생의 길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가 공생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적 공동체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있으므로 자유를 지상의 가치로 하는 자유민주주의자들과 평등을 지상의 가치로 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한 국민이라는 우정적 관계를 토대로 서로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반공주의와 종북주의를 제외한 극우와 극좌도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집권 3년차를 시작한 현 정권은 국민통합에 더 힘써야 한다. 한국은 세종시 문제로 정치적 열병을 앓고 있는데, 국민통합적 인식에 입각하면 이 문제도 전향적으로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세종시는 본래 지역불균형 때문에 제기된 것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풀려면 냉전체제의 붕괴와 대중무역의 급속한 성장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서해안 산업벨트에 대한 구상을 제시하고, 야당과 정치적 그레이트바겐(대타협)을 시도하면 될 것이다. 김정일과 가능하다면, 야당과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시대정신 이사장 ※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명박 정부 출범 2년을 맞아 <한겨레>에 국민통합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안 교수는 현재 뉴라이트 계열 두뇌집단인 ‘시대정신’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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