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선임논설위원
언론과 자본의 왜곡된 관계를 이제 공론에 부칠 때가 된 것 같다. 자본의 무차별 공세로 언론의 자발적 복종이 내면화함으로써 자본에 대한 언론의 감시·견제 기능이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언론은 독자에게 외면당하고, 자본은 국내외 소비자들의 거대한 불매운동에 직면할 수 있다. 언론이 자본에 굴복해 침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최근의 ‘도요타 사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국내에 번역·출판된 <토요타의 어둠>은 도요타가 엄청난 광고비를 쏟아부으며 언론을 입막음하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도요타의 광고비에 목줄을 매고 있는 언론사들은 도요타에 나쁜 기사는 자발적으로 축소하고 누락시켰다. 그 결과, 도요타 자동차의 중대한 결함은 시정되지 않고 오랫동안 은폐되다 결국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한꺼번에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광고를 미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린 도요타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돈을 써가며 파멸을 자초한 꼴이 됐다. 국내 자본권력의 상징인 삼성은 불행하게도 도요타와 너무나 흡사한 길을 걷고 있다. 최근 출판된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둘러싼 국내 언론의 반응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할 뿐이다. 삼성은 막대한 광고비를 무기로 몇몇 진보언론을 제외한 대다수 언론을 사실상 평정했다. 이제 특정 기사와 관련해 압력을 넣거나 부탁을 하지 않아도 언론 스스로 삼성 비판 기사는 아예 쓰지 않거나 축소하고, 삼성 비위를 맞추는 기사는 앞다퉈 키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 언론과 도요타의 관계가 한국 언론과 삼성 사이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은 지금까지 퍼부은 광고비가 드디어 결실을 보고 있다며 흡족해하고 있을까. 만약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삼성의 최대 위기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결국 부패하기 마련이고 종국에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눈앞의 당근에 눈먼 언론도 그것이 ‘마약’임을 알아야 한다. 우선은 삼성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회사 경영수지는 나아질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언론은 신뢰를 잃고, 독자는 점점 멀어져 간다. 독자 없는 언론은 장기적으로 생존하기 어렵다. 지금 언론과 자본은 죽음으로 가는 달콤한 키스에 도취해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삼성이 먼저 쓴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자세를 갖춰야 한다. 언론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는 건 과욕이다. 쓴소리 중에는 건전한 비판뿐 아니라 의도를 가진 음해성 비난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비판 목소리 자체를 아예 못 나오게 하는 건 삼성에 오히려 독이다. 설사 국내 언론은 입막음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외국 언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도요타도 일본 언론을 순치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미국의 비판 여론은 어쩌지 못했다. 언론이 광고를 의식하지 않고 삼성을 자유롭게 비판하길 기대하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해 보인다. <한겨레>나 <경향신문> 등 몇몇 진보언론이 손해를 감수하며 힘겹게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자본의 언론 장악을 제어하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언론 전체가 연대해 자본 견제 기능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삼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대형 언론사의 선도적 구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삼성을 살리면서 언론 전체가 함께 사는 길이라는 공감대를 넓혀가자. 언론을 손아귀에 쥐려는 자본의 탐욕과 생존경쟁에 내몰려 있는 언론 자신이 큰 걸림돌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서는 머잖아 삼성도 궁지에 빠지고 언론도 설 자리를 잃을 게 뻔한데 어쩌겠는가. 언론과 자본이 지금과는 다른 ‘지속가능한 공생의 길’을 찾는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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