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논설위원
김연아 어머니만큼은 아니라도 자식 일에 대해선 전문가 흉내를 얼추 내게 된다. 아이들 공부가 꼭 그렇다. 그런 아내 말로는, 아이들이 수학 공부를 할 때 고비가 있다고 한다. 첫번째 고비는 초등학교 4∼5학년이다. 더하기·빼기·곱하기·나누기의 사칙연산만 하다 공배수와 공약수, 분수의 통분·약분 따위를 배우게 되는 때다. 계산의 수준이 갑자기 높아지기도 하거니와, 약수·배수라는 추상적 개념을 문제에 적용해 풀어야 하니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두번째 고비는 방정식을 배우는 중학교 1학년이다. 글로 된 문제를 읽고 무엇을 찾아야 할지 알아내 이를 수식으로 바꿔 풀어내는, 한 단계 높은 추상화가 필요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언어능력도 있어야 한다. 그 뒤에도 고비는 더 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곱셈공식·인수분해 등은 고등학교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반복된다. 더 정교한 사고가 필요하다. 그쯤 되면 부모가 봐주기엔 이미 버겁다. 때 아니게 수학 얘기를 꺼낸 것은 민주당 때문이다. 요즘 민주당은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엉뚱하게 더하기·빼기에 끙끙대는 학생 같다. 성희롱 전력의 우근민 전 제주지사 영입 논란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선거에서 지면 의미 있는 공천이 무슨 소용 있느냐”, “한나라당이 우 전 지사를 영입하려고 하더니 배 아파서 그렇게 비난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한다. 당선 유력 후보를 영입했으니 더하기 하나, 상대의 몫을 뺏었으니 다시 더하기 하나라는 식이다. 그런 계산은 진작에 어긋났다. 우 전 지사 복당은 성폭행당해 살해된 부산 여중생의 주검이 발견된 바로 다음날 발표됐다. 정치공학을 들이댈 것도 없이 여론의 역풍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랬다. 잘못의 무게가 다르다고 생각했다면 더욱 순진했다. 한나라당은 성범죄자 등 파렴치범의 공천 신청을 아예 거부하겠다고 민주당과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우근민 사태를 좀더 즐기겠다’고 쾌재를 불렀다. 야권연대를 논의중인 다른 야당이나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당 내부에선 실망과 비난이 쏟아졌다. 비판과 견제로 공격하는 쪽이 되어야 할 야당이 되레 비난의 대상이 된 것만으로도 민주당의 손실은 크다. ‘1+1=2’가 이미 아닌 것이다. 가치의 붕괴는 더 크다. 이번 일이 아니라도 민주당의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걱정은 이미 많았다. 자신이 대변해온 이상과 가치에서 멀어지게 되면 자칫 정당의 존립조차 위태로워진다는 것은 독일 사민당이나 일본 사회당의 몰락이 이미 보여준 바 있다. 정당이 정치적 가치나 명분 대신 당장의 이해득실에만 열중하는 집단으로 인식되면 지지자들이 굳이 지지할 이유를 찾기 어렵게 된다. 텃밭에서 확실히 독식하겠다고 지방의원 선거구를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멋대로 뜯어고친 ‘광주 민주당’이나 이번 우근민 논란이 그런 예다. 국민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읽어내고 그 해법을 정식화해 제시하지 못하는 정당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리더십을 의심받는 지금 민주당 지도부가 꼭 그런 꼴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대해선 야권 여러 세력의 공감대가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야당들과 시민사회단체는 범야권 후보단일화 원칙에 합의한 데 이어 공동의 정책구상도 발표했다. 차이를 앞세우며 다투기만 했던 이들이 공통분모를 찾아 힘을 함께 배가시키려 애쓰는 것만도 큰 진전이다. 하지만 자기만 손해 보지 않으려 계산속만 앞세우다 보면 그런 시도는 실패하게 된다. 그리되면 앞으로 치를 총선과 대선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아직도 산수 수준의 정치가 제일인 양 우기는 ‘꾼’들부터 서둘러 뒤로 물려야 할 이유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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