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에스비에스〉(SBS)가 지난 겨울올림픽을 단독 중계하면서 ‘보편적 시청권’ 문제가 중요 이슈로 등장하였다. 보편적 시청권이란 중요한 국가 차원의 행사나 스포츠 등을 차별 없이 ‘고품질’ 방송을 통해 거의 ‘무료’로 볼 수 있는 시민의 권리를 말한다. 한국 시민에게는 올림픽과 같이 중요한 이벤트를 <한국방송>(KBS)과 <문화방송>(MBC)이 제외된 상태에서 경험하는 것이 생소한 일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적 경험의 장에서 ‘소외된’ 두 방송사는 뉴스방송을 동원해 가면서 이를 격하게 비판하였고, 마침 에스비에스 중계 해설이 실제로 다소의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논란을 증폭했다. 그래도 이번 일로 인해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기관과 시민사회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단독중계냐 복수중계냐”의 선택보다는 중요한 국가 이벤트를 ‘고품질’ 방송을 통해 거의 ‘무료로’ 편하게 즐겨야 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하다. 물론, 시청자들은 지상파방송 3사가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송출하는 같은 화면을 두고 해설만 달리 하는 것을 싫어한다. 지난 독일월드컵 때의 지나친 중복중계가 이번 겨울올림픽 단독중계의 명분이 되기도 하였다. 경기 자체의 중복중계는 차치하고라도 올림픽이나 월드컵 시즌이 되면 지상파 방송의 모든 프로그램은 갈래를 불문하고 해당 대회를 소재로 그야말로 ‘도배’를 하게 되는 것도 문제다. 중복중계가 나쁘다며 단독중계를 했거나, 앞으로는 무차별적인 중복중계를 자제할 것이니 단독중계만은 안 된다고 주장하던 방송사들은 다시 올림픽 선수단 환영 국민음악회를 동시 생중계하여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당 중계’에 집중하게 되면 역설적으로 보편적 시청권의 핵심적 의미를 놓칠 우려가 있다. 보편적 시청권은 상업화된 미디어 산업 현실에서 중계권을 확보한 사영사업자가 ‘금을 그어놓고’ 돈을 낸 사람만 국가 이벤트를 즐길 수 있게 하는 매우 강력한 경향을 막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케이블이나 위성방송에 가입해야만 국민 세금으로 기른 선수들의 운동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일은 없게 하자는 것이다. 다채널이 되고 경쟁이 늘어나면 원래 즐기던 내용은 더 좋아지고 이에 더해 새로운 것들도 더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무료로 보던 것을 돈 내고 보게 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또한 ‘품질’을 생각한다면 단독중계보다는 복수중계를 통한 ‘제한된 경쟁’도 긍정적일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영차영차” 구호만 외치다가 눈물을 쏟는 해설이 감동적일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는 냉정한 분석을 한마디 툭 던지는 것이 편할 수 있다. 아울러 같은 올림픽이나 월드컵 경기 중 두 방송사가 외면하는 경기가 있다면 이는 제3의 방송사를 통해서라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유럽으로 가면 이런 당연한 목표들이 실제로 잘 시행되고 있다. 공영방송이 일차적으로 주요 국가 경기를 중계하고, 이 방송사가 하지 않거나 못하는 경기는 다른 지상파 방송사들이 우선적으로 중계하도록 하는 것이 제도로 정착된 나라들이 있다는 것이다. 2006년 개정된 방송법은 ‘보편적 시청권’ 개념을 도입하고자 했지만 이것을 ‘시청자의 권리’ 차원이 아니라 ‘사업자 간의 과당경쟁 방지’ 차원으로 잘못 이해해 법제화함으로써 현재의 사태가 불거졌다.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보다는 ‘시청권’ 문제로 풀어가려다 보면 손쉬운 답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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