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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숭례문은 우리 시대의 참회다 / 노형석

등록 2010-03-16 20:31

노형석  대중문화팀장
노형석 대중문화팀장




60년 전 쓰린 기억을 꼭 저렇게 헤집어야 할까.

2008년 6월 일본의 고대 도읍터인 나라의 국립박물관에서 열렸던 ‘국보 호류사 금당전’은 가슴 저릿한 충격이었다. 한국인들이 7세기 고구려 승려 담징의 작품으로 확신하는 고찰 호류(법륭)사의 금당 벽화 12폭(모사도)과 불상을 비롯한 금당의 보물들이 빛났다. 그런데 살펴보니 전시의 행간은 자랑과 긍지가 아니었다. 인도 굽타 불상 양식의 균형미와 부드러운 조형이 물결치는 벽화 모사도는 실물과 다름없지만, 그 아래엔 화마가 할퀸 60년 전 옛 벽화의 참혹한 사진이 붙었다. 되레 절에 얽힌 치욕스런 과거를 상기하자는 호소가 아닌가.

그 치욕이란 1949년 1월26일 호류사 금당에 불이 나 벽화를 비롯한 내부가 홀랑 타버린 사건을 말한다. 벽화를 모사하던 화공의 전기방석이 누전으로 불이 나면서 1400년 묵은 세계적 문화유산이 숯덩이가 됐다. 1934년부터 시작된 대수리 중 벌어져 아픔은 더욱 컸다. 불탄 벽화 앞에서 참회 기도를 올린 절 주지의 합장 장면과 사건 경위 등을 담은 사진 패널 등도 보았다. 불탄 벽화와 타버린 금당 내부 기둥 등은 참상 그대로 절 수장고에 보관중이라는 글이 눈에 박혔다. 박물관 도록 뒷부분에는 당시 신문에 보도된 화재의 전말과 20여년 이어진 복구 과정을 정리해놓고 불탄 벽화와 금당 옛 부재의 큼지막한 사진을 실었다. 화재 직후 <아사히신문>은 칼럼에 “쇼와(히로히토 일왕이 재위한 1925~1989년의 연호) 시대 일본 국민의 두 가지 대실패는 침략전쟁과 호류사 금당 소실”이라고 일갈했다. ‘호류사를 불태우는 나라는 문화국가가 아니다’라는 쓰라린 구호 아래 벌어진 재건사업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들은 증언했다. 금당 벽화는 사고 18년 만인 1967년 일본 화단 최고의 명장 14명을 엄선해 국민성금으로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원래 벽화의 촬영본을 분석하며 복원 기법을 검토하는 숙고의 시간이 흘렀다. 불탄 벽화는 1년 만에 복원됐고, 호류사 대수리는 1985년에야 끝난다. 전시에서 만난 나라의 한 시민은 “호류사 참화는 문화재 복원의 본질이 참회와 기억임을 일깨워준 사건”이라고 했다.

이 금당 전시 넉달 전 숭례문은 불탔다. 전각의 장중한 처마선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무너진 그 현장에서는 지금 절절한 참회의 분위기를 느끼기 어렵다. 지난달 10일 착공한 복구공사는 구설이 잇따랐다. 문화재청과 신응수 도편수는 착공 전 “공사는 전통 방식대로, 국가 직영으로 하겠다”고 공언했다. 인부 옷도 전통 한복으로, 철공구 만드는 전통 대장간도 짓겠다고 했다. 정작 공사는 민간 업체가 맡았고, 착공식에서는 간이 크레인인 호이스트로 1층 문루 부재인 평방을 들어올려 전통 재현이 맞느냐는 논란을 샀다. 뒤이어 문화재청은 숭례문 가설물 디자인 공모전 계획을 밝히더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광화문 복원을 두 달 앞당긴다는 발표도 튀어나왔다. 정작 올해 문화재 방재 예산은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깎였다.

숭례문 복원은 홍보쇼 무대가 아니라 문의 과거가 남긴 엄중한 흔적들과 대면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다. 조선 초부터 1960년대까지 숱한 장인들의 제각기 다른 손길이 지나간 문을 어떻게 재조립할 것인지 원칙을 소통하고 세우는 것도 큰일이다. 요즘 1962년 복원에 참여한 원로 장인들이 신 도편수에게 조언 대신 불평만 한다는 말들이 들린다. 3만여장 들어갈 전통 기와를 만들 공방 시설 터는 미정이고, 서소문 쪽 성벽 연장 등도 숙제로 남았다. 숭례문이 이 시대가 짊어진 참회의 무게라는 것을 문화재청이 모르지는 않을 터다.

노형석 대중문화팀장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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