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주 연극평론가
1950년 창단된 국립극단은 과거 60년 동안 이 나라 정치·사회·문화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6·25 전쟁 그 각박한 시절에도 국립극단은 피란지에서 연극의 불을 밝혔다. 국립극장은 민족문화의 상징이요, 공연예술 발전의 모태요, 국내외 문화교류의 동력이었다. 그 극단이 지금 와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부임해서 1년도 안 된 예술감독이 재단 사업장으로 전보되고, 단원들은 해촉되면서 국립극단은 현재 휴면상태이다. 국립극단, 그 법통은 현재 오리무중이다. 문제의 발단은 문화부가 추진하는 국립극단 재단법인화 사업이다. 문화부는 극단 체제를 개선해서 예술의 향상을 도모한다지만 문제 파악이 정확하지 않았다. 근본적 문제는 예술과 운영에 대한 관의 간섭과 재정적 지원의 영세성이다. 열악한 창조환경, 단원의 예술적 자질, 극장장과 예술감독의 리더십 빈곤 등의 문제도 있다. 그러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법인화와 외국인 예술감독 초청은 결코 현명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관성 있는 장기안목적 지원정책에 의한 근원적이고도 항구적인 해결책이 강구되어야 한다. 모스크바예술극장은 세계 명작을 탄생시키며 110년을 넘고 있다. 링컨센터는 500년 앞을 내다보고 지었다. 영국 국립극장은 “이 세상 최고의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고전 명작의 산실이 되었다. 신극 100년에 60년을 지킨 국립극장 영욕의 역사는 잊을 수 없다. 남몰래 긴급구호 펼치듯 하지 말고, 뿌리 깊고 단단한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립극장 설립 목적과 이념을 도외시하는 경제논리적 단기안목 개선책은 국립극장 발전을 저해한다. 시장논리는 예술의 대중화와 상업화를 촉진해 국립극장 고유의 성격을 마모시키며, 예술의 창조적 실험성과 공공성을 훼손한다. 법인화는 운영과 재정의 자율성을 제한하면서 주요 판단을 관료에게 의존하기 때문에 예술의 향상을 기약할 수 없다. 법인화가 목표로 삼는 재원의 다양화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공연활동 수입의 증대도 한계점이 있다.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아서 후원금을 기대할 수도 없다. 단원의 통제, 연봉제, 보상제 등의 실시로 단원 상호간의 연대감이 소멸되고, 위화감이 확산되어 창조활동은 약화된다. 이 때문에 예술적 다양성, 진취성, 자율성을 성취할 수 없다. 너무 조급하고, 허술하고, 독선적으로 시행되는 법인화에 앞서서 더 시급한 것은 국공립 극단의 사회적·예술적 기반의 형성이며, 문화예술진흥법 개정과 극장 운영규정의 보완이다. 예술감독은 국립극단의 정신이요, 언어요, 상징이다. 그는 극단의 활동 방향을 설정하고, 내용을 창조하고, 내일의 길을 연다. 이런 막중한 책임을 외국인에게 맡겨서 6개월간 연기훈련을 하고 배우를 선발하게 한다니, 한마디 묻자. 그는 우리말을 아는가? 그는 우리들 정신 속에 있는가? 그는 우리 습성에 젖어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국립극장 예술감독으로서는 실격이다. 기술감독이 되어 예술감독을 도와줄 수는 있다. 러시아 작품인 경우 드라마트루그(연출가의 자문역)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창작극 국가브랜드 창조를 꿈꾸는 국립극장에서는 절대로 안 된다. 국민 모두가 국립극장이다. 국립극장은 문화부 전유물이 아니다. 왜 국립극단 존폐 여부와 시스템 개혁을 결정짓는 중대 사안에 대해서 연극계, 예술계, 문화계, 학계 등 인사들의 조언과 현장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가. 문화 민주주의, 문화의 공공성, 예술적 자유와 존엄 등 고귀한 이념에 헌신해야 하는 문화부 장관에게 나는 묻고 싶다. 이태주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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