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지난 11일 영국 법원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이 있었다. 이 재판의 원고는 <더 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록밴드 핑크 플로이드, 피고는 그들의 앨범 배급사인 이엠아이(EMI)였다. 핑크 플로이드가 이엠아이에 소송을 제기한 건 디지털 음원 시장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노래 단위로 팔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핑크 플로이드는 이런 상황이 이엠아이와 맺은 계약에 포함된, 그들의 음악은 노래 단위로 팔릴 수 없다는 조항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이엠아이는 그 계약은 온라인 음원 판매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이엠아이의 주장에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다. 이 계약이 맺어진 시점이 1989~90년 사이였기 때문이다. 음원이 오직 음반으로만 판매되던 시대다. 그러니 밴드의 동의 없이 싱글이나 편집 앨범을 발매하지 않는다는 합의 정도를 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이 일어났다. 상황이 바뀐 셈이다. 양측 다 설득력 있는 상황. 법원은 핑크 플로이드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엠아이가 핑크 플로이드와의 계약을 위반했다며 원고에게 6만파운드를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비록 승소했으나, 이윤이라는 측면에서 핑크 플로이드의 소송은 시대를 역행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나의 콘텐츠를 가지고 다양한 판로를 개척하는 건 사업의 기본.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즈를 그들은 거부한 거다. 왜 그랬을까. 대중음악은 그것을 담는 형태에 맞춰 발전해왔다. 축음기용 에스피(SP)에서 출발한 음반은 엘피(LP)의 등장과 함께 46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음악을 재생할 수 있게 됐다. 그 시간을 가장 잘 활용한 건 70년대의 록밴드들이었다. 그들은 46분을 노래들의 모음이 아니라 각 노래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기승전결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핑크 플로이드는 그 정점에 있는 밴드의 하나였다. 그들의 작품 대부분이 개별적 노래보다는 앨범으로서의 주제의식에 충실했던 명반들이다. 따로 싱글로 발매되지 않는 이상, 하나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앨범을 구매해야 했던 시대가 가능케 한 작업이다. 따라서 앨범을 전제로 완결된 미학을 노래 단위로 판다는 건 이(E)북 시대에 박경리의 <토지>를 챕터로 쪼개 판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런 읽을거리를 상상할 수 없듯, 앨범 단위로 들어야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음반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번 재판의 판사는 문제의 조항이 ‘앨범의 예술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라 해석했다고 한다. 새로운 시대를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완결된 형태로 존재하는 문화는 지켜야 한다는 선언이리라. 먼 과거의 유물만 문화재로 보존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이전 세대의 문화적 양식도 존중할 가치가 있음을 일깨우는 판결이리라. 어디 음악뿐이랴. 개발의 시대. 도시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지금, 살았던 집이 모두 빌라나 아파트로 바뀐 것도 아쉬운데 자라면서 연을 맺었던 많은 장소들도 사라지고 없다. 동대문운동장, 세운상가, 피맛골. 실체의 문화는 그렇게 사라지고 관념의 추억만 남았다. 핑크 플로이드의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을 듣는다. 문득, ‘달’이 개발의 은유처럼 느껴진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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