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무상급식 연속기고 <1>
세종시 논란에 가렸던 6·2지방선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변화의 핵심에는 무상급식 논쟁이 놓여 있다. 야권은 무상급식을 이번 선거의 핵심 의제로 제시했고, 여권 역시 저소득층을 위한 무상급식안을 제출했다. 무상급식을 일찍이 제안해온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16일 2110여 단체가 참여한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를 출범시켰다. 이른바 ‘식판 전쟁’, ‘밥의 정치’가 돌연 우리 사회를 뒤흔들어 놓고 있다. 누구는 무상급식이 사소한 이슈라고 할지도 모른다. 결코 그렇지 않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의료개혁안이나 2009년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의 얀바댐 건설 중단안에서 볼 수 있듯이, 선거에서 쟁점 정책은 중대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얀바댐 건설 백지화는 자민당 장기집권의 기반인 ‘일본열도 개조론’의 전면적 거부이자, 토건국가에서 복지국가로의 대전환을 요구한 것이었다. 무상급식 논쟁에는 세 가지 코드가 담겨 있다. 첫째, 철학적 의미다. 보수세력은 무상급식을 ‘부자급식’,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지만, 현재 시행중인 저소득층 무료급식 지원은 학생들에게 눈칫밥이라는 ‘낙인효과’를 가져옴으로써 인권과 교육권 침해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 헌법 31조는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학생이 아침에 교문을 들어서서 오후에 학교를 떠날 때까지 그 모든 게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교육을 단지 지식전달 과정으로만 생각해온 철학의 빈곤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최대 병폐가 아니었던가. 둘째, 경제적 의미다. 바람직한 경제운영의 목표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요청된다. 그 효과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국민 60% 이상이 반대하는 4대강 사업에는 22조의 예산을 투여하면서도 정작 3조의 예산이 요구되는 무상급식에 인색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더불어 ‘친환경 직거래 무상급식’은 지역순환경제 활성화는 물론 일자리 창출이라는 또다른 경제적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셋째, 정치적 의미다. 무상급식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는 ‘살림의 정치’다. 뉴타운 개발과 특목고 유치로 대변되는 보수세력의 ‘욕망의 정치’에 맞서서 무상급식은 중산층과 서민의 구체적인 가계 및 생활을 해결하려는 살림의 정치를 목표로 한다. 더욱이 무상급식은 친환경을 지향함으로써 ‘생활로서의 살림’(housekeeping)을 넘어서서 ‘생명으로서의 살림’(living)을 포괄하는 생태정치의 비전을 담고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새로운 발전전략에 대한 토론이 진행돼 왔다. 보수세력이 여전히 신자유주의의 유효성을 강조한다면, 진보개혁세력은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국가비전을 모색하고 있다. 세계화의 충격과 양극화의 심화라는 안팎의 조건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복지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보편적 복지의 강화와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 복지의 강화가 그것이다. 무상급식은 바로 전자의 과제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거시적으로 무상급식 논쟁은 우리 민주화가 둘째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권위주의 정치를 넘어서는 게 제1차 민주화의 목표였다면, 국가는 과연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며 사회·경제적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모색하는 게 제2차 민주화의 과제다.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우리 사회는 이제 역동적 복지사회로 가는 문턱에 올라선 셈이다. 더욱 치열하고 생산적인 토론과 논쟁을 기대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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