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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사르트르, 김예슬, 지식인 / 고명섭

등록 2010-03-23 20:20

고명섭  책·지성팀장
고명섭 책·지성팀장




20세기 지식인들의 지식인이었던 장폴 사르트르(1905~1980)는 지식인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문제를 사유의 과제 가운데 하나로 삼아 고민했다. 1965년 가을 도쿄를 방문한 사르트르는 이 고민의 결과를 세 차례의 강연으로 발표했다. 그 강연문을 묶어 뒷날 펴낸 것이 <지식인을 위한 변명>인데, 거기에서 그는 기괴한 지식인관을 제시했다. “지식인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문장은 지식인에 대한 세상 사람들, 특히 지배자·권력자들의 비난을 그대로 옮긴 문장이다. 조용히 학생이나 가르치면 될 선생들이, 조용히 글이나 쓰면 될 작가들이 왜 시국에 관여하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가.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끼어들고 간섭하는 이 지식인이란 자들이 문제다. 사르트르는 그런 낙인을 훈장으로 바꾸어 버린다. “맞다. 지식인은 자기와 무관한 일에 참견하는 자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이 탄생 순간부터 벌써 그런 존재였다고 말한다. 1898년 드레퓌스 사건의 한복판에서 에밀 졸라가 소설 쓰기를 제쳐두고 “자퀴즈!”(J’accuse!) 곧 “나는 고발한다”고 외치고 나섰을 때, 반드레퓌스 우익세력이 한목소리로 작가가 왜 쓸데없이 남의 일에 끼어드느냐고 비난의 화살을 쏘는 순간 현대적 의미의 지식인은 탄생했던 것이다. 사르트르는 그런 지식인을 ‘명성을 남용하는 자’라고도 일컫는다. 전문영역에서 쌓아올린 명성, 말하자면 상징자본을 세상을 바꾸는 데 사용하는 자가 지식인이라는 말이다.

이 사르트르적 지식인을 중심에 두고 지식인의 가계도를 그려보면 그 앞과 옆에 ‘계몽적 지식인’과 ‘유기적 지식인’이 있다. 사르트르적 지식인의 직계 선조라 할 존재가 계몽적 지식인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스스로 철학자라고 불렀던 지식인들, 곧 볼테르·루소·디드로·달랑베르가 18세기를 계몽주의 시대로 만들었다. 이들은 중세적 교회권력에 맞서 미몽의 세상에 빛을 끌어들이려 했다. 그런가 하면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은 사회 계급의 신경 노릇을 하는 지식인이다. 노동자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이야말로 그람시적 지식인의 본령이다. 이 세 부류의 지식인은 당대 피억압자를 대신해 그들의 대표자·대변자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바로 이런 의미의 지식인, 대중 위에서 대중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지식인이 죽었다는 풍문이 나돌던 적이 있었다. 대중이 이제 스스로 지식의 주인이 되었으므로 그런 지식인은 역사의 전면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퇴장해도 좋다는 진단이었다. 그러나 대학생 김예슬씨의 ‘자발적 퇴학’ 사건은 우리 시대의 지식인이 흔쾌하게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 짓눌려 익사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김예슬씨는 대자보에 이렇게 썼다.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 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덧붙인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 지식인의 고향, 지식인의 태반이었던 대학이 김예슬씨의 말대로 대기업과 대자본의 하청업체가 돼 버린 것인가. 시대는 여전히 지식인을 요청한다. 계몽적 지식인이든 유기적 지식인이든 침묵 바깥으로 나와야 한다. 사르트르적 지식인의 불온한 기운이 넘쳐야 한다. 그래서 이 땅의 수많은 김예슬들과 함께 ‘불의에 대한 저항’의 꿈을 꾸어야 한다. 대학이 죽은 지식인들의 묘지여서는 안 된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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