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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사모곡 / 김삼웅

등록 2010-03-25 20:01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삼가 옷깃 여미고 의사님 영전에 올리나이다. 하늘에서 굽어 살피소서. 오늘은 님 가신 날입니다. 순국 100주년에도 7000만 가슴에 어리니 가셔도 계심이여!

“하늘을 떠받칠 인물의 출현은 나라는 망하더라도 희망의 광명은 아직 있음을 말해준다”고 창강 김택영이 노래했듯이, 님은 무너지는 물결에 우뚝 솟은 지주(砥柱)였으며, 붉은 해처럼 항상 새롭고 영원합니다.

님의 의거가 있었기에 망국노의 처지에서도 의열사가 뒤를 잇고, 동양 무대에서 조선인으로 행세할 수 있었고, 중국 땅에서 사람 대접을 받게 되었으며, 임시정부와 무장투쟁의 기지 설치가 다 님의 성망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님은 당대의 시류를 넘어 하늘의 뜻과 역사를 넓고 높게 조망할 줄 알았습니다. 그 시기에 만국공법과 공화주의를 깨친 안목, ‘동양평화론’에서 제시한 식견, 형 집행을 앞두고도 흔들림 없이 쓴 웅혼한 글씨에서 님의 바위 같은 담력과 서릿발 같은 기상을 찾습니다. “그가 이룬 것은 하늘이 시켰다 할 것이나 잡혀 있던 200일 동안에 산 사람으로서 뜻을 굽히지 않은 것은 사람으로서 쉬운 일이 아니다”(김택영)라는 대목에서 신성을 찾습니다.

죽음에 이르러서도 당당하게도 적을 꾸짖고 동양평화론을 설파한 그 풍도, 강개의 뜻 오늘에도 복받칩니다. 짧은 31년의 결곡한 삶이나 늠연한 문사의 길 그리고 강고한 투혼을 지닌 무인의 결기는 공자가 말한 사무사(思無邪) 그대롭니다. 생애의 어느 한 가닥 한 올도 삿됨이 없었습니다.

문천상이 “공자는 인(仁)을 이룩할 것을 말하고, 맹자는 의(義)를 취할 것을 강조한지라, 의를 다하는 그것만이 곧 인에 이르는 길이다” 했거늘, 님은 인을 통해 의를 이루고, 의를 다해 인을 이루었습니다. 하늘은 가끔 인성과 함께 신성을 갖춘 인물을 낸다는데, 님이야말로 인성과 신성을 동반했습니다. 적군 포로를 살려준 인성이나 적괴를 처단한 신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 섬의 끓는 피여! 열 말의 담력이여! 벼르고 벼른 기상 서릿발이 시퍼렇다/ 별안간 벼락치듯 천지를 뒤흔드니/ 총탄이 쏟아지는데 늠름한 그대의 모습이여!” 만해가 의거 소식을 듣고 쓴 글에서 님의 기상을 살핍니다. “슬프다, 그러므로 자연의 형세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인종 이웃나라를 해치는 자는 마침내 독부(獨夫)의 환난을 기필코 면하지 못할 것이다”란 님의 최후진술에서 일제 패망을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찾습니다. ‘독부’의 뜻이 새롭습니다.

님께서 생명과 바꾼 ‘동양평화’는 아직 멀고,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제국주의 괴물을 낳은 모태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토의 죽음을 슬퍼하고 추모제를 지낸 무리들의 모태도 번창합니다.


우국충정과 춘추대의를 지키고, 세속의 명리를 한낱 티끌같이 여기며 대장부의 길을 걸었던 님이여, 순국의 날 새벽 고국의 부인이 섬섬옥수로 지어 보낸 우리옷 갈아입고, 동쪽 향해 단정히 앉아 붓을 들었지요.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처해도 기운이 푸른 구름과 같다” 하셨으니, 님은 정녕 여백연금(如百鍊金), 백번 불건쇠와도 같았습니다.

님 가신 지 100주년, 백범이 효창원에 가묘를 만든 지도 60년이 지났건만, 아스라이 님 묻힌 곳 어드멘가, 님의 유해는 어느 하늘 아래에서 고국을 그리시는지요, 일본의 책임을 묻습니다. 정부의 무관심을 묻습니다. 생사초월 시공초탈의 인성과 신성이여, 죽어도 살아있음이여, 세월의 더께에도 이끼 덮이지 않고 청정하심이여, 백범이 님의 가묘 묘단에 쓴대로 ‘유방백세’-꽃다운 향기여 영원하소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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