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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도로아미타불 조계종 개혁 / 김종구

등록 2010-03-25 20:04수정 2010-03-25 20:04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속담의 유래를 놓고는 다양한 설이 있다. 한순간의 잘못으로 사모하는 여인이 파랑새로 변한 젊은 스님의 이야기, 강 건너편에 두고 온 노새를 찾으려 얼어붙은 강을 다시 건너며 ‘도로아미타불’을 염불하는 행인 이야기 등 그럴듯한 속설이 많다. 그런가 하면 ‘10년 동안 아미타 부처님이 서방정토에 계신 줄 알고 염불했는데 서방정토는 바로 내 마음속에 있었다’는 깨달음에서 유래했다는 이론도 있다. 어쨌든 ‘도로’는 ‘다시’가 아니라 헛수고를 뜻하는 도로(徒勞)라는 게 다수설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사회 곳곳에서 민주화의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도로아미타불’이었다. 그럼에도 그 표현을 꺼렸던 것은 불교계를 욕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였다. 하지만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파문을 지켜보노라니 지금 조계종한테 딱 들어맞는 말이 도로아미타불인 듯싶다.

조계종 종단개혁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94년 봄, 지금부터 꼭 16년 전 일이다. 그 뒤에도 조계종 개혁은 애초의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내부 알력과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종단의 자주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적은 없었다. 이번 봉은사 사태를 놓고 감히 도로아미타불이라고 말하는 것은, 돈과 감투싸움에다 권력의 개입 의혹 등 16년 전의 적폐를 또다시 목도하는 탓이다.

먼저 돈의 문제. 몇년 전 불교전문지인 <법보신문>의 한 논설위원은 이렇게 단언했다. “그동안 한국 불교계에서 일어난 종권 다툼과 주지 자리 다툼은 한마디로 ‘임자 없는 돈’을 누가 먼저 움켜쥐고 제멋대로 쓸 수 있느냐를 놓고 벌인 추잡한 권력투쟁이었다.” 이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게 보인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종단내 권력투쟁의 근원적 단절책으로 제시됐던 사찰 재정의 투명화를 가장 앞장서 실천한 명진 스님이 표적이 된 점이다. 불교계 안에서는 명진 스님의 개혁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선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예전에는 스님들이 봉은사에 들르면 용돈을 챙겨주곤 했는데 이런 관행이 사라지면서 인심을 잃었다는 말도 나온다. 입맛이 씁쓸할 뿐이다.

둘째, 감투싸움. ‘닭 벼슬만도 못한 게 중 벼슬’이라는 말도 있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봉은사 직영사찰 추진 배경을 놓고도 어김없이 문중의 자리 나눠먹기 이야기가 나온다. 자승 스님이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 신세진 계파를 챙겨주려 했다는 관측이 그것이다.

셋째, 권력의 간섭과 결탁.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좌파 주지 교체’ 발언은 이번 사태를 기존의 조계종 내분과 구분짓는 결정적 요소다. 물론 안 대표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이를 곧바로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문제로 연결짓는 것은 비약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명진 스님이 정권에 밉보인 점은 총무원의 ‘결단’을 재촉한 계기가 됐으리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역사적으로 봉은사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은 조선 명종 시절 허응당 보우 스님이 주지를 맡으면서부터다. 하지만 보우는 후견인인 문정왕후가 숨진 뒤 유림 등의 집중공세를 받아 제주도에 유배됐다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봉은사 사태를 접하면서 자꾸만 보우와 명진 스님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보우의 죽음으로 불교 부흥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던 것처럼, 사찰 재정 투명화 성과는 다시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나마 보우 스님이 곤경에 처했을 때는 승려들이 합심해서 맞서기라도 했다. 그런데 지금 조계종 안에서는 “종단 내부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김종구 논설위원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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