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본영 국제뉴스팀 기자
한국과 미국의 집권 정치세력이 비슷한 시기에 그 나라 최고법원과 갈등을 빚고 있다. 시국사건 무죄판결 속출에 뿔이 난 한나라당은 ‘사법제도 개선안’을 내놓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1월 연두교서 발표 때 기업들의 정치광고 금지를 철폐한 연방대법원 판결에 대해 “한 세기가 된 법률을 뒤집었다”고 반발한 이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두 사안에는 판결에 불만을 품은 집권자 쪽이 사법부를 공격하고 나섰다는 표면적 공통점이 있다. 내용적으로는, 한국에서는 보수정권이 정적들에게 면죄부를 준 사법부에 대대적 선전포고를 한 반면, 미국에서는 개혁 성향의 대통령과 보수 성향의 연방대법원이 말다툼을 벌이는 정도라는 차이가 있다.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은 누가 이길지에 쏠릴 것이다. 한국 상황을 보면,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가 이승만과 맞선 이후 가장 첨예하다는 갈등에서 대법원이 쉽게 이기기 어렵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대법원에는 ‘무기’가 없다.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언급하며 한나라당 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법원행정처장의 성명 발표가 전부다. 집권세력 입장에서는 “큰집에서 불러 쪼인트 까고” 싶겠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 게 다행인지 모르겠다. 대법원에게 원군은 중과부적인 야당의 저항 정도다. 미국에서는 오바마의 연방대법원 공격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편이다. <뉴욕 타임스> 칼럼은 이번 사안을 뉴딜정책에 재를 뿌린 연방대법원을 개조하려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사례와 비교하며 “대법관들이 이길 것”이라고 점쳤다. 루스벨트는 연방대법관을 9명에서 15명으로 늘리려는 시도에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연방대법원이 백악관의 심기를 건드린 판결을 스스로 뒤집었기 때문에 그가 판정승했다는 시각도 많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사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존중과 권력분립 정신 훼손 때문에 오점을 남겼다. 이번 판결에 대한 반대 여론이 80%인데도 상황이 오바마한테 유리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이런 역사적 교훈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사법부에는 불행하게도 이런 정도의 존경이 따르지 않는다. 대법관이 종신직이라면 존 로버츠 미 연방대법원장처럼 “우리가 거기(오바마의 연두교서 발표장)에 왜 갔는지 모르겠다”며 배짱을 부리겠지만 그렇지도 못하다. 사법부가 불리한 형세에 놓인 배경에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태생적 약점도 있을 것이다. 선거로 구성되지 않는 권력은 ‘민주적 정당성’ 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권자의 위임을 받은 국회가 입법권을 행사해 ‘사법개혁’을 하는 것은 어떤 방식이든 괜찮다는 주장은 단순하고 위험하다. 선출 권력이 아닌 사법부는 정치 바람이나 일시적 여론으로부터 가장 독립적일 수 있다. 사법부의 ‘민주적 정당성’ 결여가 정치와 사법을 분리시켜 민주주의의 ‘순도’를 높이는 역설적 효과를 내는 셈이다. 연방대법원을 존중하는 미국인들의 태도도, 선거 결과나 여론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지키는 최후 방어선이 사법부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많은 나라에서 입법과 행정은 같은 세력이 장악해도 사법부의 독립성은 흔들지 않는 이유부터 곱씹어봐야 한다. 더구나 정권 반대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분풀이와 사법권 침탈이 사법부 흔들기의 동기라면 파시스트적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아흔아홉 개 가진 사람이 한 개를 더 가지려 한다는 말은 권력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역대 독재자들이 완전히 손아귀에 넣고 싶어한 그 한 개가 사법권이다. 이본영 국제뉴스팀 기자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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