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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여성가족부의 정체성을 묻는다 / 허성우

등록 2010-03-31 21:46

허성우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 교수
허성우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 교수




지난 3월19일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재개편되었다. 여성부(2001)가 여성가족부(2005)로, 그리고 여성부(2008)가 다시 여성가족부로 바뀐 것이다. 관련자들과 미디어는 이를 조직의 양적 확장과 질적 전환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부-여성가족부로의 반복적인 조직개편은 왜 일어나는 것이며 그 이면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는 여성부 자체의 고유한 업무의 성격, 대상과 정체성의 혼란과 불안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출범 이래 시민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나왔던 질문들 중 하나는 여성부의 ‘여성’이 도대체 누구이며, 왜 남성부는 없는가였다. 이는 여성부의 주요 목적인 남녀 불평등 문제에 대한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없었던 데서 나온 것이라고 풀이된다.

이론상, 여성부에서 다루는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여성의 몸을 가진 모든 여성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차별구조 안에서 기본적 인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배제되고 소외된 여성들이다. 실업여성, 일자리가 불안한 여성,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여성, 다양한 폭력 피해 여성, 장애여성, 이주여성, 가난한 여성들이 그들이다. 이들을 위한 사회적 지원을 하는 것이 여성부처의 고유한 업무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5위이지만 여성권한척도는 61위, 성 격차지수는 115위를 점하고 있다. 이는 사회 전반의 발전에 견줘 남녀 관계가 그만큼 불균형하며 국가적 차원의 정책적 조절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합의에 동의한다고 해도 현실에서 여성가족부가 소외된 여성들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하는지 대다수 국민들은 잘 확신하지 못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70%를 점하는 여성들, 50만 여성실업자, 올해 초부터 계속 감소세인 여성취업률 등의 지표에서 보듯 이명박 대통령의 여성 일자리 150만개 공약은 물거품이 되었고, 여성가족부의 일자리 창출 사업은 소외계층보다는 여성 기업인, 고학력 여성, 중산층 여성들에게 더 접근하기 쉬운 것처럼 보인다. 최근 여성정책을 보면 여성들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력 감소를 메울 미래의 ‘노동력’이자 아이를 많이 낳아야만 할 ‘도구’로, 혹은 정부의 녹색성장 사업이나 4대강 사업과 같은 정책을 지지해야 할 ‘대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제 ‘여성가족부’는 기존 업무와 함께 복지부처에서 이관된 어린이, 청소년,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등 새로운 분야를 담당한다. 그러나 과거 여성가족부 시절의 교훈이 말해주듯 본래의 남녀평등업무와 복지부처에서 이관된 가족업무가 병렬적으로 양립한다면 여성가족부의 정체성은 또다시 흔들리게 될 것이다. 여성부가 왜 가족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그럴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다른 복지부처의 사업과 성격상 어떻게 다른가에 대한 분명한 정치적 입장을 가져야 한다. 가족업무는 여성이 단지 생물학적으로 가족을 돌보는 일을 담당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과 여러 형태의 배제된 가족들이 겪는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성차별적 제도와 문화의 산물이며 이것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정당한 근거를 가질 필요가 있다. 여성가족부의 새로운 가족업무는 각개약진의 사업확장이 아니라 성차별적 문화와 제도를 바꾸는 남녀평등의 정치학 구현으로 실히 수렴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럴 때 여성부든 여성가족부든 명칭과 무관하게 부처의 고유한 정체성, 영향력과 지속성이 확보될 것이다.

허성우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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