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화폐개혁 이후 북한 상황을 놓고 설왕설래다. 완전 실패라는 평가 속에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강조하는 각종 보도가 잇따랐다. 김정일 위원장 생일날 식량열차 습격사건이 벌어지는가 하면 화폐개혁의 책임자가 총살당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도대체 믿어야 할지 고민스러운 소식들이다. 과거에 비해 북한 정보가 풍부해지고 신속해진 것은 사실이다. 적지 않은 탈북자들이 들어와 있고 북-중 국경지역의 휴대전화 정보를 얻는 것이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폐개혁 소식은 우리 당국보다 탈북자 관련 인터넷 매체가 먼저 알리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정보가 풍성하긴 해도 여전히 북한은 우리에게 접근이 어려운 취재 대상이다. 다양한 교차확인과 신중한 사실확인이 필요한 까닭이다. 화폐개혁 이후 북한 동향에 대해서도 사실확인이 불가능한 추측과 무성한 소문들이 사실인 양 기사화되고 있음을 본다. 북한 주민이나 국경 상인들이 실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는 것은 무리가 없지만 당과 정부기관 내부의 은밀한 권력동향까지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난센스다. 해임과 처형, 공식사과 및 긴급대책회의나 총격전 등의 선정적인 기사가 사실확인도 없이 유수 언론에 의해 기정사실로 간주되는 것 자체가 아직도 우리 사회의 북한 관련 정보가 초보적인 수준임을 짐작하게 한다.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무수한 정보들이 사실로 둔갑하는 것은 오보의 잘못에 그치지 않고 정부 당국의 대북정책에도 결정적 오류를 제공하게 된다. 만약 북의 화폐개혁이 완전 실패라면 그리고 이로 인해 북한 체제의 위기가 임계점에 이르렀다면 정부로서는 북을 더욱더 압박하고 조여서 조기 붕괴를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곧 망할 것이라는 정세인식이라면 북과의 협상이나 회담은 부질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핵 포기를 설득하기 위한 지루한 6자회담도 쓸데없는 일이 되고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실무회담 역시 불필요한 골칫거리일 뿐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대북 기조가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우연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화폐개혁이 실패가 아니라 북으로서는 제재와 압박을 버티기 위한 시간벌기에 성공한 것이라면 붕괴를 유도하는 대북 강경정책은 완전한 잘못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번 화폐개혁이 일정하게 성과를 낸 것이라면 그리하여 북-미 갈등과 남북 대결의 구도에서 북이 수년간 버틸 수 있는 내부 단속과 체제 정비를 이룬 것이라면 이 경우 대북 강경정책은 오히려 북의 고슴도치식 강경대응만을 야기할 뿐이다. 다소의 혼란과 소란이 있었지만 신권으로 화폐 유통이 되고 있음은 화폐개혁이 영 실패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북한 당국 스스로 화폐개혁이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이상 당분간이라도 계획경제를 강화하고 인플레를 완화하고 국가재정을 확충하겠다는 예상 목표는 그런대로 달성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화폐개혁과 함께 대규모 외자유치를 위한 구상이 나오는 것도 내부 다지기와 외부 지원을 동시에 얻으려는 북한의 장기 전략임을 짐작게 한다. 국제사회의 제재와 남한의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안팎의 토대를 얻기 위함이다. 화폐개혁으로 위기를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번 북한이라면 대북 압박은 오히려 역효과만 낼 뿐이다. 북한의 정책은 항상 실패하고 결국은 망하고 말 것이라는 주관적 기대를 앞세워 자의적인 북한 ‘그리기’에 매몰될 경우, 그리고 그 그림에 토대해 잘못된 정책을 추진할 경우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정책적 실패를 자초하고 말 것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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