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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정도 벗어난 ‘천안함’ 보도 / 성한표

등록 2010-04-02 19:33수정 2010-04-02 19:34

성한표  언론인
성한표 언론인




진실은 항상 하나다. 하지만 많은 경우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진실에 이르려면 우선 사실을 축적해야 한다.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증언이 가장 일차적이고 믿을만한 사실에 속한다. 해군 초계함 천안함 침몰 과정과 관련된 사실을 제일 많이 수집한 쪽은 해군 당국이다.

하지만 해군은 침몰 원인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존자 58명의 증언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편집자들은 수집된 몇 조각 안 되는 자료들을 가지고 사건의 진상을 그려보려는 뉴스 가공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이 작업에는 정부나 군 당국의 발표는 물론이고 이른바 전문가들의 추론이나 추측, 익명의 ‘관계자’나 ‘소식통’들의 말에다 떠도는 소문까지 동원된다. 신뢰도나 비중이 다른 여러 정보들을 마구 뒤섞어 편집자의 의도대로 조립하는 일도 흔히 일어난다.

4월1일과 3월31일치 <조선일보>의 뉴스 가공이 전형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31일 조선일보는 “침몰 전후 북 잠수정이 움직였다”는 기사를 1면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정부 소식통’을 인용한 이 기사는 “사고 발생 지역인 백령도에서 멀지 않은 북한 서해안 잠수함 기지에서 천안함이 침몰한 지난 26일을 전후해 잠수정(또는 반잠수정)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북 잠수정이나 반잠수정이 기지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어서 이번 사고와의 연관성을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바로 그 ‘소식통’의 말을 덧붙였다. 균형감각을 갖춘 편집자라면 잠수정이 며칠 기지에서 안 보였다는 것을 바로 천안함 사고와 연관시키는 편집을 하지 않는다. 더욱이 모든 정보가 집중되는 청와대가 (잠수정의) “궤적이 불분명하지만 천안함 사고와는 별개로 보고 있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 조선일보를 펴 든 독자들은 “북한 잠수정이 이번 사고와 관련된 모양”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은 독자들의 선입견이나 이해부족 탓이 아니라 이런 인식을 갖도록 편집자가 뉴스를 가공했기 때문이다. 어뢰니 기뢰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판에 북한 잠수정이 움직였다는 정보가 주요기사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1일치 조선일보는 ‘김정일 방중설’까지도 천안함 사건과 연관시키려는 의도를 보였다. “천안함 침몰에 북한이 연루됐을 것으로 보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방중을 결정했을 것”이라는 어느 ‘전문가’의 말을 인용 보도한 것이다. 중국 방문과 같은 큰일을 하루이틀 만에 결정한다는 가정도 상식 이하이고, 국제사회가 천안함 침몰에 북한이 연루된 것으로 본다는 주장은 뭘 근거로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뉴스도 “그래, 북한이 범인이야” 하는 인식을 굳히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편집자들은 알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도 연일 천안함 사건을 다룬다. “아직 북한의 개입 여부를 확증할 수는 없지만” 하는 식의 설명을 붙이면서도 제목에서 ‘국가적 위기’, ‘결단의 자세’, ‘비상한 조치’ 등 전투적인 용어를 구사하면서 북한과의 결전에 대비해야 한다는 투의 주장을 편다.


이번 사고의 조사 결과가 북한과의 관련성을 내비치는 일부 언론의 보도대로 나올지 아닐지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설사 이들의 보도가 조사 결과에 적중한 것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정도를 벗어난 보도 태도가 합리화될 수는 없다. 언론은 점술가가 아니며 보도는 점치는 작업이 아니다. 용한 점술가처럼 결과를 딱 맞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추론의 과정이 논리적이고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성한표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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