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관련 보도가 넘쳐나고 있지만 군 관련 취재는 껄끄러운 사안이다. 오랜 기간 기자사회에서 통용되던 얘기로는 국방부 담당 기자가 출입처에 나가면 갈 곳이 두 군데밖에 없다고 했다. 하나는 기자실이고 또 하나는 화장실이다. 국방부를 직접 출입해본 경험은 없지만, 군과 관련해서는 불편한 기억이 제법 있다. 새내기 기자 시절 군인들이 이따금 총기를 들고 탈영해 인질극을 벌이는 사건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대부분 사병이나 부사관들이다. 인질극으로 인한 대치는 수십 시간을 넘어갈 때도 있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경우는 모두 탈영병의 피살 또는 자살로 끝났다. 총격전이 벌어진 것 같지도 않은 상황에서도 항상 당사자의 죽음으로 종료됐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의 입을 영원히 다물게 하는 것이 사건의 파장을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관행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느껴졌다. 1980년대 초반 북한이 소련제 미그 23기를 다수 반입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데스크의 지시에 따라 억지 해설기사를 쓴 적이 있다. 남북의 공군력을 비교하고 만일 외신 보도가 사실로 드러난다면 하는 식으로 하나마나한 해설을 썼다. 다음날 공군본부에서 신문사로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은 동료가 뭔가 낌새가 이상했는지 자리에 없다고 둘러대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정훈감실의 장교라고 신분을 밝힌 사람은 그 해설기사에는 불순세력의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판단되며 군 수사기관에 의뢰해 배후를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위협했다. 나아가 공군은 조국의 영공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으며 북괴의 어떠한 도발도 분쇄할 태세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다행히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번지지는 않았으나,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권위주의 체제의 몰락과 함께 군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언론을 통한 홍보나 국민 설득 작업은 여전히 거칠고 서투르다. 현역 장교가 아닌 군 관련 연구소에 근무하는 민간인 연구원들조차 소개를 받아 연락을 하면 보도가 되는지의 여부를 먼저 묻는다. 언론에 보도되는 경우라면 사전에 무슨 목적으로 기자와 만나는지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일자리를 찾아 일본에 건너와 불법적으로 장기체류하고 있는 한국인 남성들이 많았다. 당시 일본의 한 정치인이 한국인들은 총기를 다룰 줄 알기 때문에 방치할 경우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병역의무가 없는 나라와 달리 해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군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복귀하는 것은 한국의 또다른 현실이다. 군 지도부가 설사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정보를 선별적으로 공개하거나 윤색을 하더라도 그것이 일방적으로 통용되던 시대는 지났다. 다양한 분야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언론에 잠수함을 비롯한 군함의 특수구조를 가리키는 격실이란 낯선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군의 초기 대응 과정을 보면 유사시 해수의 침수나 화재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격실이 군 지도부의 정신구조 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천안함 사건은 한 치의 의혹도 없이 원인과 초기 대응의 문제점이 규명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전쟁은 정교한 시나리오에 따라 일어나기도 하지만 불신과 오해의 증폭 속에 우발적으로 터지기도 한다. 한국전쟁 60년을 기억해야 하는 올해 그 엄청난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남북관계가 험악하고 핫라인조차 원활하게 가동되지 않는 상황에서 군 지도부의 발언은 신중해야 한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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