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 기획위원
오늘도 공중파 방송과 신문은 삼성전자의 분기실적이 매출 34조에 영업이익 4조3000억원이라며 크게 보도하고 있다. 지난번에도 기록적인 분기실적을 올렸을 터인데, 과문의 탓인지 그것이 서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들어본 적은 없는데 그 숫자가 자기 배도 채워 주리라고 믿는 삼성왕국의 신민들에겐 중요한 뉴스인 게 틀림없겠다. 하지만 민주공화국 시민이 아니라 하더라도 몸의 노동자라면 그 천문학적 숫자보다 그 그늘에서 스물셋 나이에 숨진 박지연씨를 더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고등학교 3학년생이던 2004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했다. 3년 뒤 급성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고 3년간 투병했지만 결국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꽃다운’ 나이라고 부르자니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했음에 침전 없는 슬픔부터 앞선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건강했던 박씨가 백혈병에 걸린 이유로 화학물질과 방사선에 노출된 점을 들지만 삼성왕국에서 그게 먹힐 리 없다. 대신 “병원비는 물론 낡은 집도 고쳐주겠다”며 산재 신청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여 딸자식을 공장에 보낸 가족들의 아픔을 삼성 방식으로 위무해주었다. 지금까지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는 확인된 것만도 아홉명, 그러나 대한민국의 근로복지공단은 아무에게도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개나 소나 다 가는 대학에 가지 못하고 삼성반도체 공장에 입사했을 때 그 젊은 가슴은 어떤 꿈을 품었을까? 영혼을 팔지 않으려면 대신 육신을 ‘인간을 위한 청정지역이 아닌 반도체를 위한 청정지역’에 내던져야만 생존할 수 있는 현실 앞에서 한순간이라도 부르르 몸을 떨지는 않았을까? 신자유주의 지배가 강고해지면서 이 땅에서는 밥벌이의 ‘지겨움’보다 밥벌이의 ‘현장’ 자체가 더욱 무서워지고 있다.

연재홍세화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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