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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웰빙, 너 얼마면 되니? / 정세라

등록 2010-04-06 20:34

정세라  경제부문 기자
정세라 경제부문 기자




십여년을 대충 건너뛰던 아침을 한 달 전부터 먹기 시작했다. 아침을 꼭 먹는 아침형 인간과 함께 살게 됐기 때문이다. 동거인인 아침형 인간은 아침(!)부터 생선을 굽거나 고기를 볶거나 국을 끓이길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출근길에 사는 카페라테 한 잔이면 그만으로 살아왔다. 바쁘기도 했지만 젊음이 주는 ‘건강’이란 보증금을 과신한 탓도 있을 것이다.

집밥과 인연이 멀어진 것은 출근 인생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아침잠은 5분이 아쉬운 터라 주중 아침은 건너뛰었고, 점심·저녁은 외식이 대부분이었다. 중국산 싸구려 설렁탕이나 잔반을 재탕한다는 음식점 반찬들을 모르고도 먹고, 알고도 먹고…. 풍문으로는 웰빙이 대세라는데, 이와는 한참 거리가 먼 생활을 했던 셈이다.

사실 누구나 웰빙, 이른바 참살이를 추구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삶이 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증거도 된다. ‘빨리빨리’가 입에 밴 성장제일주의 시대를 지나, 사람들은 이제 건강하고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희구한다. 하지만 어쩌랴. 정부의 최우선 정책들과 기업 문화는 보통 사람들의 욕망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웰빙은 몸과 마음, 일과 여가, 가정과 사회생활의 균형을 통해 건강한 삶을 지향하려는 가치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는 일중독을 강요하는 정부 정책과 기업 문화에 매여서 살아간다. 사회 곳곳에서 일중독은 치료받아야 할 심리적 병증이 아니라, 성공의 기본 요건으로 칭송되는 분위기다. 가까운 예로 ‘엠비(MB)노믹스’ 전도사인 김중수 신임 한국은행 총재 역시 누구나 동의하는 워커홀릭으로 이름났다. ‘술 먹다 죽은 사람은 봤어도 일하다가 죽은 사람은 못 봤다’는 말을 남겼다거나 아랫사람들의 야근을 늘 독려했다는 뒷얘기들이 들려온다. 그분은 모르시는 모양이지만, 우리 사회엔 일하다가 죽은 사람도 어지간히 많다.

이러다 보니 우리의 웰빙은 불구다. 일찍 집에 돌아가 슬로푸드로 건강한 식탁을 꾸리는 대신, 요란한 웰빙 마케팅을 덧붙인 값비싼 상품들을 사들이며 웰빙과 거리가 먼 삶을 위무한다. 웰빙은 삶의 방식이나 태도일진대, 대형마트 카트에 골라 담는 웰빙 ‘상품’만 넘쳐나는 셈이다.

최근 음료업계에서는 어떤 기능성 음료보다도 맹물이 잘 팔린다고 한다. 5~6년새 고급 생수 수입액은 두세배나 뛰었다. 빙하수니 산소수니 값비싼 물들의 ℓ당 평균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은 원유 가격보다도 높다. 마돈나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야 이런 물로 목욕도 한다지만, 보통 사람들은 언감생심 그런 일은 꿈도 꾸기 어렵다. 하루에도 1~2ℓ씩 마셔야 하는 물인데, 어쩌다 돈 만원 주고 수입 생수 330㎖ 한 병을 마셨다고 해서 건강한 삶에 가까워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저 웰빙을 열망하는 이들에게 웰빙 마케팅이 건네는 값비싼 위로일 따름이다.

진짜 웰빙은 삶이 일에서 한발짝 더 이동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한쪽에선 패스트푸드 산업이 여론에 밀려 퇴조하지만, 대형마트에선 ‘프리미엄’ 딱지를 붙인 가정용 반조리 음식 매출이 해마다 50% 안팎 성장하는 역설은 그래서 나타난다. 웰빙 산업의 번창이 우리 삶을 웰빙으로 인도하지는 못하더란 얘기다.

아침에 구운 생선 비린내는 서둘러 출근하는 통에 환기가 충분히 안 돼서 퇴근길 심사를 뒤집는다. 확! 금지 메뉴로 써붙이고 싶지만, 건강이란 인생 보증금을 다 까일지도 모른다는 소심증이 부쩍 들어 그럭저럭 참고 있다. 맘 약한 중생이라 ‘웰빙 마케팅’의 품에 언제 다시 뛰어들지는 모르겠지만.

정세라 경제부문 기자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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