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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임나일본부설’의 폐기와 안중근 / 노형석

등록 2010-04-08 20:08

노형석  대중문화팀 기자
노형석 대중문화팀 기자




천안함 침몰의 충격에 휙 가려졌지만, 지난 3월 대한민국은 내내 민족주의 바람에 들뜬 한 달을 지새웠다. 봄바람에 실려온 춘정처럼 익숙한 열병이었다. 곰곰 뜯어보면, 겨울 끝물에 그리도 한국인들이 민족에 뜨거워졌던 까닭은 단 하나, 역사의 ‘루저’였던 한국이 이제야 일본을 제대로 이겨보기 시작했다는 게 아닐까.

그 계기는 3월 말 한-일 역사공동위에서 낸 임나일본부설 폐기 선언과 1910년 조선 침략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의 순국 100주기(3월26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나라 학자들이 꾸린 연구위는 4~6세기 한반도 남부를 왜가 임나일본부란 거점을 두고 지배했다는 설에 대해 “왜인이 산 흔적은 있어도, 영토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언론들은 한-일 역사 공방의 승리로, 전과물처럼 다뤘다. 이 소식은 사흘 뒤 100주년 기일을 맞은 안 의사 추모 이벤트의 불쏘시개가 됐다. ‘불멸’의 화두와 신화, 호국 상징화를 부르짖는 각종 추모행사, 소설 발간, 언론 특집 등이 잇따랐고, 그를 장군으로 부르기로 했다는 군의 발표가 있었다. 앞서 일본을 압도한 겨울올림픽, 월등한 경기회복세, 일본 기업들의 한국 따라 배우기 등이 부추긴 국운상승론도 한몫을 했다.

우리 역사관 앞에 패한 일본은 과연 회개할 것인가. 이런 푸석한 논리에 길든 언론과 대중의 민족주의 예찬은 현실 앞에서 부질없다. 두 나라 사람들은 일본 열도와 한반도에 실재한 옛 공존의 역사에 고개를 돌리고, 서로를 대상화한 타자로 속단하는 바보짓을 거듭해왔다. 일본 극우파들 머릿속에는 고대 잃어버린 한반도 땅을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디엔에이(DNA)처럼 박혀 있다. 야마토 국가의 왕후가 3세기 물고기를 타고서 삼한을 정벌했다는 <일본서기>의 황당 전설을 사명감으로 떠받든다. ‘한반도=옛땅’이란 곡해는 임진왜란과 정한론, 조선병합의 비극을 낳았다.

한국인들도 만만찮다. 고대 한반도에 서린 왜인들의 삶과 그들의 유적·유물을 우리가 다 먼저 알고 가르쳐 줬다는 식의 일방 구도에 맞지 않으면 깔아뭉개기 일쑤다. 3~6세기 왜국의 전형적인 무덤 양식인 장구형 무덤(전방후원분)이 90년대 이후 한반도 남부에서도 다수 보고됐지만, 아직도 기본 보고서조차 거의 없고 체계적인 발굴조사도 기피한다. 왜인 무사들이 쓴 듯한 갑옷류나 토기류도 전라·경상 해안 유적에 나오지만, 대놓고 묻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물론 편견의 철옹성 시대는 지났다. 임나일본부는 이제 한반도내 생활 교역 기지의 하나로 보는 시각이 일본의 정설이다. 국내 학계도 삼국시대 즈음까지 우리와 일본은 사실상 한 역사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조금씩 늘어간다. 양국 해안에서 이웃 나라 선조들의 유물·유적들이 지천으로 교차확인되는 물리적 현실을 누를 수 없다. 같은 현해탄 생활문화권에서 민족 구분도 큰 의미가 없던 시절, <일본서기>의 5세기 전 고대사 기술은 우리 사서와 절반 이상 관련 ‘팩트’를 공유한다는 사실도 그렇다.

의사 안중근이 꿈꾼 동양평화론의 공동체 국가는 의식했건 안 했건 고대 한-일 간 공동체 교류사 전통이 모판이 된다. 그런 전통 공동체 정신의 20세기판 복원을 옛땅 찾기라는 뒤틀린 욕망으로 짓뭉갠 이토를 제거하고 안 의사가 공동체 세상의 예언자가 된 건 필연이었다. 우리는 고대 한반도 지배 로망에 혹하고 이를 실현한 이토를 영웅시하는 이웃 국민과 어쨌든 공존해야 한다. 우리를 지배했던 그들 생각을 철저히 알고, 공익 공생의 논리를 찾아야 한다. 1400년 전 우리 선조와 왜인들이 열도, 반도에서 아옹다옹 어울려 살았듯이.

노형석 대중문화팀 기자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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