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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무엇이 자살로 몰고 가는가? / 허찬희

등록 2010-04-08 20:17

허찬희  한국정신치료학회 회장
허찬희 한국정신치료학회 회장




연이은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으로 깊은 충격을 받은 우리 사회는 그 대책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다’, ‘우울증은 뇌질환이니 약물치료를 잘 받으면 된다’, ‘햇볕을 많이 쬐면 좋다’는 등의 처방과 더불어, ‘경쟁적 사회 환경이 자살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다소 막연하다. 이처럼 심각한 사회문제에 대해 현재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이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안이하고 피상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럽고 스트레스가 되는 사건이 무엇일까? 자식을 부모보다 앞세워 세상을 떠나보낼 때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다고 한다. 비록 그러한 경우에도 우리는 자살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자살로 몰고 가는 정신병리의 깊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 정도가 심각하다. 연예계에서 인기를 유지하는 데 대한 부담감이라든지, 누나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라든지, 경쟁 사회에서 심리적 부담감 등의 이유는 물론 이차적인 동기는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는 정신병과 마찬가지로 매우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정신치료자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인간에게 가장 뿌리 깊은 고통은 외로움과 허전함이다. 이 감정은 태어나서 6세 이전에 부모와의 정서적인 유대관계에서 생긴다. 이 시기에는 부모, 특히 어머니의 따뜻한 보살핌과 공감적 태도가 중요하다. 부부 사이 갈등이나 어머니의 부재,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있더라도 아이의 심정을 잘 이해해줄 능력이 없으면 아이는 항상 마음이 허전하게 된다. 비록 성인이 되어 인기를 얻어 대중의 사랑을 받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항상 외롭고 허전하다.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자살 동기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정한 자살 동기도 모르는 상태에서 목숨을 버린다. 현재의 괴로움이 어린 시절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 때문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기에 더욱 힘들게 허우적거리게 된다. 현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해결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실마리가 잡히지 않고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런 점에서 부모로서 부부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자녀들의 심정을 공감할 수 있는 양육태도가 자녀들의 정신건강에 가장 중요하다.

최근 자살 사건과 함께 발생한 김길태 사건의 경우, 두 살 때 길에 버려진 아이라 ‘길태’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버려진 아이’라는 표현 속에 그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함축되어 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으면 소외감 속에 자라게 되고 분노심이 생기게 된다. 사이코패시나 우울증의 뿌리는 같다. 단지 양상이 상반되게 나타날 뿐이다. 사이코패시는 소외감과 이에 따른 분노심이 남을 괴롭히는 쪽으로, 우울증은 자신을 학대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살의 정신병리가 깊고 그 정서적 뿌리가 인생 초기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하며, 부모-자식 관계는 가정의 기초가 되는 부부 관계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해결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결혼이란 부부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녀에 대한 책임이 포함되며, 일생에 걸쳐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허찬희 한국정신치료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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