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이종석칼럼] 문제의 본질은 정권의 무능력이다

등록 2010-04-11 20:39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생때같은 우리 젊은이들이 서해의 차디찬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지 보름도 더 지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사고 직후 회의에서 “총력을 기울여 구조작업을 진행하라”고 지시했지만, 단 한 명의 추가 구조자도 없었다. 오히려 열악한 구조환경 속에서 다시 정예 해군요원 1명과 9명의 민간인이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시스템이 문제라고들 한다. 매사가 주먹구구 식이다.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대통령을 보좌하여 즉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매뉴얼에 따라 관련 부처들을 아울러서 신속하게 대응조처를 마련해야 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얘기다. 맞는 얘기지만 이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 정권이 너무 무능력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고 발생 직후 대통령 주재로 안보관계 장관회의가 열렸지만 여기서 실종자를 구하거나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처가 취해졌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회의가 열린 안보상황실에는 한국형 해군전술지휘통제체계(KNTDS)를 포함하여 중요 안보·재난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보고받고 지시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대통령이 국가위기상황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인데, 현 정권이 이를 과거 정부의 유물이라고 폐기처분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날 대통령을 보좌하여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조직하고 운용한 실무경험에 비추어 보면 최초 회의에서는 상황보고와 대응조처가 집중논의되었을 것이다. 군에서 올라온 상황보고는 급하게 작성되었기 때문에 허술한 구석도 있었겠지만 모든 관련 정보가 지속적으로 취합되는 상황실 체계 덕분에 참석자들은 곧 사태를 웬만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파악된 상황에 기초한 대응조처의 경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군의 경계태세 강화는 거의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실제 화급하고 중요한 조처는 실종된 수병들을 구조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회의가 실시간으로 열리는 경우 군의 내실있는 조처 보고서가 제때에 올라오기 어렵기 때문에 회의 참석자들의 위기대응능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게 된다. 즉, 대통령과 장관, 참모들은 청와대 위기관리 요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군의 보고내용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빠진 것이 있으면 채워야 한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민간과 군을 가릴 것 없이 실종자 구조와 침몰 선체 인양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동원하기 위한 결정을 해야 하며, 군과 관계부처들은 즉각 이 결정을 집행하기 위해 철야로 움직여야 한다. 그 결과 각종 구조장비를 실은 선박과 구난함은 대부분 사고 당일 밤에 전국 각지에서 백령도 사고해역으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그날 밤 이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납득이 가지 않는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안보책임자들은 안보관계 장관회의 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나? 회의만 일찍 열면 대수인가? 조처사항을 검토할 능력도 없다면 회의에는 왜 참석했나? 대통령과 참모들의 머릿속에 위기조처 개념이 들어 있기나 한지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혹시 참모들이 대통령의 기세에 눌려 그 앞에서는 의견 개진은커녕 오금도 못 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도 생긴다. 도무지 정권의 ‘무능력’ 이외에 다른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기야 진정성과 국리민복보다는 이미지 정치에 더 몰두하고 입만 열면 좌파척결을 운운하며 극우적 분위기를 확산시키고 그 반사이익이나 보려는 정권에 위기관리능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