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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금강산발 먹구름 / 양문수

등록 2010-04-12 19:45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1. 올 2월에 만난 대북사업가. “올해의 전망? 글쎄 지난 2년과 크게 다를 게 있겠어요? 결국 이 정권 5년 내내 이럴 것 같아요. 제 주변에서는 그렇게 봐요.” 남북경협 현장에서 올해를 어떻게 보는지 물었을 때 그는 탄식과 체념의 답변을 했다.

#2. 올 3월에 만난 업계 관계자. “기업에 대한 방북제한 조치가 별것 아니라고 보실 수 있겠지만 위탁가공사업 하는 입장에서는 중대 사안입니다. 특히 전자제품이 그래요. 직접 기술지도를 하지 못하면 제품 품질관리가 안 되고, 그러면 구매기업이 즉각 문제제기를 합니다. 결국 주문이 끊기는 거죠.” 그는 중소기업의 경우 지난해 대북사업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도산까지 간 업체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3. 개성공단 사업이 존폐 기로에 섰던 지난해 3월, 어느 토론회에서 입주기업 관계자. “이제 저희는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우리 재산은 우리가 지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남한 정부든 북한 정부든 그 어느 쪽도 믿을 수 없습니다.” 토론회장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분위기로 돌변했다. 그의 말에는 비통함과 비장함이 배어 있었다.

지난 8일 북한이 금강산 지역의 남한 정부 관련 부동산을 동결하고 새 사업자와 관광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위 장면들이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나갔다. 천안함 침몰의 북한 연루 여부로 어수선한 시점에 북한이 이런 초강수를 둠으로써 남북관계는 더욱 얼어붙고, 남북경협은 한층 더 위축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북한이 앞으로 카드를 하나씩 하나씩 내보이면서 금강산 사업에 대해 압박수위를 높여가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불똥은 이제 금강산 밖으로도 튀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날 “개성공단 전면 재검토” 가능성을 내비쳤다.

대체 어떻게 하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을까. 논란의 한가운데는 관광객 피격 사건이 있다. 남한은 관광 재개를 위한 3대 전제조건으로 진상규명, 재발방지, 신변안전보장 문제를 내세웠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해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절대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으니 그걸로 다 정리되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남한은 제도화 차원에서 문서를 요구했다. 특히 최고지도자가 구두로 약속했으니 실무진이 문서로 만드는 게 뭐가 어려우냐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북한은 최고지도자가 구두로 약속한 것만으로 모자라니까 실무진이 문서로 만들어주어야 확실한 보장이 된다는 것은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손상하는 것이라는 논리다.


“남한도 북한도 상대방의 체제·문화를 이해하고 배려하기보다는 자신의 체제·문화를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주에 만난 정부 관계자는 실무자로서의 고충을 이렇게 토로했다. 남북한 정부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설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이성적 압박조처는 자신들이 갈구하는 금강산관광의 재개는 물론, 현재 자신들이 국가적 차원에서 힘을 쏟고 있는 외자유치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남한 정부도 마찬가지다. 지난 2년 동안 원칙의 견지를 통해 북한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이에 따라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초석을 놓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 당국 사이 신뢰의 상실, 남북경협의 위기적 상황, 특히 민간기업들의 한숨과 눈물 및 대북사업 의욕 상실, 나아가 북-중 경협 확대라는 비용을 치렀다. 이제 새로운 위기 국면에서 성과와 비용, 즉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다시 한번 따져보고,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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