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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공포 / 함석진

등록 2010-04-13 18:28

함석진 기자
함석진 기자




곰은 힘으로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는 듯 행동할 때가 많다. 그래서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일단 힘으로 제압하려 든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보면 북미 원주민들은 이런 성질을 이용해 곰을 사냥한다.

커다란 돌덩이를 나뭇가지에 매달고 꿀을 발라 둔다. 먹이를 발견한 곰은 발길질로 돌덩이를 제압하려 든다. 돌덩이는 시계추처럼 밀려났다가 돌아오면서 곰을 때린다. 화가 난 곰은 더욱 세게 돌을 때리고, 돌은 더 큰 반동으로 곰을 때린다. 결국 곰은 쓰러진다. 이렇게 제 힘을 믿는 곰도 유독 보이지 않는 것에는 약한 모습을 보인다. 곰이 다니는 길목에 보이지 않게 음향기기를 설치한 뒤 곰이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내면 곰은 털을 쭈뼛 세우고 줄행랑을 친다. 동물에게나 사람에게나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을 주는 것은 보이지 않는 대상이다.

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쓴 <허트 로커>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폭발물 제거반의 숨막히는 전쟁의 일상을 그린 영화다. 그들에게 공포 대상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지뢰가 줄줄이 묻혀 있을 길 위에, 웃으며 다가오는 민간인의 옷 속에, 그들의 두려움은 널려 있다.

영화 속 앵글은 미군에게 향해 있다. 그러나 이방인의 눈에 늘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혀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라크 국민은 어떤가? 미군은 이라크와 아프간 일대에 무인정찰기와 폭격기를 띄워놓고 곳곳을 감시하고 공격한다. 조종사들은 두 나라에서 1만㎞ 이상 떨어진 미국 본토 네바다의 공군기지 모니터 앞에 앉아 전쟁을 수행한다. 화면에 잡히는 건물과 차량 위로 수없이 조준 십자표시가 떴다 사라지고, 조종사 손에 잡힌 단추 하나에 수십~수백명의 목숨이 오락가락한다. 오락기 같은 화면 속에서 일상이 정조준된다. 공포를 넘어 우리를 슬프게 하는 현실이다.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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