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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 신영복

등록 2010-04-13 20:56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사회적 기업가 학교 교장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사회적 기업가 학교 교장




‘사회적’이란 ‘여럿이 함께’라는 뜻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여럿이 함께하는 것이 아닐 수 없지만 그중에서도 물건을 생산하고 생산물을 분배하는 주체인 기업의 사회성이야말로 우리가 영위하는 삶의 사회적 토대가 된다. 이 점에서 볼 때 우리의 경제현실은 매우 안타깝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경제가 성장하여도 그것이 고용과 복지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이다. “경제성장이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반대로 불경기 때에는 겨울 추위에 개울물이 먼저 얼듯이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먼저 고통에 내몰리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경제와 사람을 잇는 다리와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업을 통해 사람이 모이고, 기업을 통해 먹을 것을 구하고, 기업을 통해 공동체의 성취감을 느끼는,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사람이 모여 ‘여럿이 함께’하는 경제를 이루도록 도와야 할 ‘기업’이라는 틀은, 오히려 현실에서 사람을 억누르고 채찍질하기만 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기업은 이런 존재이기만 한 것일까? 여럿이 함께하는 기업, 고통받는 이웃을 함께 생각하는 기업은 불가능한 것일까?

지난해에 시작한 ‘사회적 기업가 학교’는 이런 아픔과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기업연구센터, 한겨레경제연구소 그리고 여러 시민단체가 뜻을 모았다. 소외된 이웃들의 아픈 현실을 어루만지는 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해 벌인 일이다. 시작은 이렇지만, 우리 사회의 공동체 구조를 새롭게 짜는 대안적 전망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적 기업가 학교는 전문성과 현장성을 두루 배울 수 있도록 다양한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과정을 사회적 기업의 이론적 탐구에서부터 창업과 경영의 기초 및 전문 과정에 이르기까지 촘촘히 짜고 있다. 2009학년도에는 기초과정, 조직디자인 과정, 의료생활협동조합 설립과정, 사회적기업가 엠비에이(MBA), 청년사회혁신가 과정, 비영리마케팅 등 6개 강좌가 개설되었고, 200여명이 수료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졸업생들이 전해오는 변화의 사례도 고무적이다. 컴퓨터 렌털 회사에 근무하던 구자덕씨는 자원순환과 정보격차 해소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한국컴퓨터재생센터’라는 사회적 기업의 대표이사가 되어 매년 수천대의 중고컴퓨터를 재생하여 이익금은 직원들 및 지역사회와 나누고 있다. 문진수씨는 재무설계회사의 부사장직을 사직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재무상담을 하는 ‘에듀머니’의 대표를 맡았다. 문 대표는 과거보다 몇 배나 적은 봉급을 받고 있지만,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는 열정에 행복해하고 있다. 노인요양센터를 설립한 예순 나이의 사회복지사 이영애씨, 시민단체 활동가에서 지역의 사회적 기업 지원을 위한 지역재단인 ‘도봉사람들’을 설립하고 있는 박은희 대표 등 아름답고 감동적인 사례들은 많은 사람의 희망이며 자부심이 되고 있다. 이런 성과와 열정에 힘입어 올해는 지난해보다 시민사회와 연대의 폭을 넓혀 모두 9개 과정, 300명이 참여하는 사회적 기업 학교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된 변방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일에는 어려움도 많다. 그러나 학교를 찾는 사람들의 의지가 뜨겁고 지속적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학교와 교육은 단기간에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그러나 이 일의 어려움과 중요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 나가는 학교와 교육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대나무가 그 큰 키를 지탱하기 위해 짧은 마디로 시작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사회적 기업가 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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