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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듯이 / 김경애

등록 2010-04-13 21:01

김경애 사람팀장
김경애 사람팀장




봄이 오지 않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를 뿌리거나 쌀쌀해지는 ‘철모르는 날씨’ 탓만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뻔뻔한’ 냉기 탓에 좀처럼 봄기운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피겨 여왕 김연아’의 쾌거에 환호하며 국격 상승 열기로 달아올랐던 대한민국은 불과 한달새 ‘국가 망신’ 걱정으로 얼어붙은 듯하다. 일부 방송과 보수언론은 천안함 사고 원인도 실종자 확인도 안 된 마당에, 오락 프로그램을 결방시키거나 추모 성금을 모으자며 ‘전국민 집단우울증’을 부추기고 있다.

3월17일 발행된 <신동아> 4월호 인터뷰에서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큰집(청와대)이 김재철 사장을 불러다 ‘조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지난 3월8일 문화방송의 계열사·자회사 사장과 임원 인사가 만들어졌다”며 정권의 방송 장악 행태를 구체적으로 ‘자백’했다. 이 발언 파문으로 이사장에서 물러난 그는 국회 조사 등을 앞둔 4월5일 밤 미국으로 몰래 출국했다.

3월21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13일 아침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등과 조찬을 함께하며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을 겨냥해 “강남 부자 절에 좌파 스님을 그대로 놔둬서야 되겠느냐”는 발언을 했다고 명진 스님과 당시 동석했던 관계자가 잇따라 폭로했다. ‘명진 스님이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거짓 해명한 사실도 곧 드러났지만 그는 불교계를 비롯한 여론의 비난과 퇴진 압력을 ‘묵언수행’으로 뭉개고 있다.

3월24일,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으며 자진사퇴했던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전자 회장으로 전격 ‘귀환’했다. 앞서 2월5일 그는 ‘이병철 그룹 창업주의 경영철학 중 지금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거짓말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며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연말 사상 유례없는 1인 특별사면의 첫 수혜자가 된 직후 첫 공식석상에서도 “우리 사회 각 분야가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고 훈계했다.

4월1일 공성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천안함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숨진 한주호 준위의 빈소에서 근조화환을 배경으로 “거기서 같이 찍어” “한 번 더 찍어” 하며 기념사진을 찍어 공분을 샀다. 그러자 그는 ‘추모의식을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며 ‘그렇다면 빈소에서의 언론 취재활동 역시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항변했다.

4월9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 1심에서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으나 검찰은 ‘주요 사실의 판단을 누락한 의도된 반쪽 판결’이라며 반발, 항소했다. 검사 출신 한나라당 중진의원조차도 “검사로서는 치욕”이라고 비판하며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대한 별건수사 중단’을 촉구했지만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고 강행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래도 봄은 온다 했던가. 한줄기 햇살처럼 따뜻한 소식이 마음 한구석을 녹여준다. 8년 제작 기간 끝에 15일 전국 개봉하는, 미군의 노근리 학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은 50여명의 쟁쟁한 배우들은 물론 스태프와 컴퓨터그래픽 제작업체까지 무료로 참여해 빚어낸 ‘기적 같은’ 작품이란다. 특히 배우 문성근씨가 맨 처음 영화 제작에 나선 계기는 진정한 부끄러움의 힘을 일깨워준다. “노근리 사건을 세상에 알린 <에이피>(AP) 통신 기자가 연락을 해서, 2년이나 기다렸는데 한국에서 왜 영화로 안 만드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쪽팔렸다.”


김경애 사람팀장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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