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영화 <작은 연못>이 지난 주말 개봉된 것은 시기적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미군에 의한 피란민 학살인 노근리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처음부터 한국전쟁 60돌을 목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투자자 물색에서 개봉관 확보에 이르기까지 난관이 많아 8년의 긴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우여곡절이 많았겠지만, 우리 사회의 최대 금기사항 하나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가 올해 나온 것은 의미가 깊다. 전쟁영화라면 으레 등장하기 마련인 영웅이 작은 연못에는 없다. 평화로운 산골 마을이 갑자기 살벌한 전선으로 바뀌면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끼인 숱한 무지렁이들이 미 1기병사단 병력의 지시에 따라 이리저리 헤매다가 속절없는 최후를 맞는다. 이름이나 얼굴이 꽤 알려진 많은 배우들이 영화 제작 취지에 공감해 아무런 수당을 받지 않고 출연해 무명씨들의 삶을 연기했다. 보통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노근리 사건이 1999년 <에이피>(AP) 통신의 보도로 세상에 드러난 것으로 남아 있다. 특별취재팀이 사건의 희생자 유족이나 생존자는 물론이고 당시 미군 병사, 기밀자료 등을 광범하게 취재해 완성도 높은 기사를 만들어냈지만, 보도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초고가 완성된 뒤에도 통신사 상층부의 소극적 자세와 딴죽 걸기로 출고가 1년 정도 지연되기도 했다. 에이피 통신 보도가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키는 바람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국내 언론의 선행보도가 있었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노근리 사건에 대해 장문의 르포를 써 관심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오마이뉴스>를 만든 오연호씨다. 그는 월간지 <말>의 1994년 7월호에 원고지 100장 분량의 긴 글을 썼다. 말보다 조금 앞서 <한겨레>가 그해 5월4일치 신문에서 미군의 노근리 피란민 학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기사를 썼다. 당시 청주 주재기자였던 황순구씨가 작성한 이 기사는 국내 언론으로서는 첫 보도가 되는 셈인데, 아쉽게도 기사검색을 해보면 나오지 않는다. 한겨레신문사가 창간 20돌을 맞아 재작년에 출간한 사사 <희망으로 가는 길>에 실린 역대 주요 특종·기획 목록에도 빠져 있다. 당시 신문을 뒤져보니 충청판의 지역면에 실렸다. 신문으로서는 적지 않은 분량의 기사였지만, 주목도가 높은 종합면이나 사회면에서 부각되지 않은 탓에 특종감을 쓰고도 대접을 받지 못한 셈이다. 그날치 신문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한겨레신문사를 상대로 20억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이 1면의 주요기사로 다뤄졌다. 권부 실세와 전면전에 돌입하게 된 ‘비상상황’에서 편집국 간부들이 노근리 보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듯하다. <한겨레>나 <말>이 16년 전에 노근리 사건을 취재하게 된 직접적 계기는 그해 4월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라는 책의 출간이다. 노근리에서 어린 아들과 딸을 잃은 정은용씨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지금 세상에 알리지 아니하면 영영 역사 속에 묻혀버릴 것 같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1923년생인 그가 책의 형식을 ‘실화소설’이라고 한 것이나 저자 소개란에 경찰과 반공연맹에 관여했던 부분을 언급한 것을 보면, 자신이 불온한 사람이 아니라 건전한 사상의 소유자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 같아 눈물겹다. 미국 정부는 2001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유감 표명 이후 후속조처를 요구하는 유족들의 잇따른 청원에 회신조차 하지 않고 있다. 노근리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반도의 전쟁 정지 상태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어렵게 만들어진 기념비적 영화가 오락영화의 범람 속에 조용히 가라앉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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