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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좌회전 검사, 우회전 검사 / 이본영

등록 2010-04-22 18:56

이본영  국제뉴스팀 기자
이본영 국제뉴스팀 기자




“검사는 1차 회식을 하고 왼쪽으로 가는 검사와 오른쪽으로 가는 검사로 나뉜다.”

한달 전까지 법조팀장으로 근무하던 기자에게 한 검찰 간부는 이런 우스갯소리를 했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과 서울중앙지법 사잇길로 내려오면 왼쪽은 지하철 2호선 강남·역삼역, 오른쪽은 서초·사당역 방향이다. 저녁을 먹고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은 서초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검사다. ‘별 볼 일 없는’ 검사라는 말이다. 왼쪽으로 가는 검사는 고급술집들이 있는 강남·역삼역 쪽으로 향하는 검사다. ‘잘나가는’ 검사라는 얘기다. 이 말에는 약간의 질투와 함께, 직업윤리에 무감각한 동료들에 대한 비아냥이 담겨 있다.

검사들을 불러내 상석에 앉혀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변호사일 수도, 기업인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다. 브로커도 검사와 친해질 이유가 충분한 사람들이다. 왼쪽으로 가는 검사들 중에도 통이 큰 사람은 제 돈을 내고 술을 먹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칙은, 비슷한 또래의 다른 공무원들보다 높은 직급 대우를 받긴 하지만 어쨌든 월급쟁이인 검사들이 지갑을 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 여러 법조비리 사건들의 교훈들이 있는데, 왜 잊을 만하면 비슷한 사건이 터질까? 일부 검사들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처지의 불일치도 원인이라고 변명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만 해도 검사와 일반직을 합쳐 60명이 넘는 데도 있다. 가끔 회식을 하거나 작은 명절 선물을 하사하려 해도 엄두가 안 난다는 얘기다. 하지만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게 미풍양속이고, 그러지 못하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여기는 풍조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남한테 손을 벌려 꼬투리가 잡혀 출세에 지장이 있을까봐 친가나 처가에서 용돈을 주는 검사들이 있다는 얘기도 예전부터 있어 왔다.

사실인지는 확인을 거쳐야겠지만, 부산에서 검사들을 접대한 내용을 폭로한 정아무개씨의 주장을 보면 이런 문화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부산·경남지역 검찰 간부 회식 자리에 스폰서로 나왔다가 ‘제조자’가 첫 잔을 마시는 ‘폭탄주 예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석자들과 티격태격했다는 얘기는 검사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이런 게 ‘미풍양속’형 스폰서십이라면 ‘자아실현’형 스폰서십도 있다. 지난해 검찰총장 후보로 올랐으나 ‘스폰서 검사’라는 말만 유행시키고 퇴장한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후자 쪽이다. 본인은 정상적 차입과 매매라고 했지만, 집과 승용차 장만에 왜 기업인이 깊이 관여했는지는 말끔히 규명되지 않았다. 천 전 지검장과 골프를 쳐봤다는 한 법조인은 회원권도 없는 그의 실력이 놀라운 수준이었다고 귀띔했다.

어떤 형태의 스폰서십이든 본질은 같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은 수사를 하는 검사들이 누구보다 잘 안다. 공짜 저녁, 공짜 술, 공짜 골프, 공짜 떡값은 더더욱 없다. 질 낮은 스폰서가 ‘○○○ 검사를 잘 안다’고 떠들게 만든 것만으로도, 검사는 그에게 얻어먹은 밥값을 충분히 치른 것이다.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거나 당사자들이 부인한다는 이유를 달아 이번 사건을 봉합하려 할 수 있다. 혹은 여론을 고려해 한둘을 솎아내는 ‘꼬리 자르기’를 할 수도 있다. 거기서 그치면 스폰서가 붙는 이들을 잘나가는 검사로 여기는 조직 분위기는 살아남을 것이다. 현 정권 출범 뒤 검찰 인사에서 밀려난 한 검찰 간부 출신은 “삼성 떡값 리스트에 내 이름이 없었던 게 문제였나 보다”라며 자위 아닌 자위를 하기도 했다.

이본영 국제뉴스팀 기자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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