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여름에서 시작했던 음악 페스티벌이 1~2년 사이 봄과 가을로도 확장됐다. 몇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음악 페스티벌이 계절마다 열린다. 헌데, 아쉬운 게 있다. 출연진의 면면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문화다.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던 우드스톡이나 글래스턴베리 같은 전설적인 페스티벌은 그 안에 담긴 시대정신과 자발성 때문에 역사가 된 경우다. 화려한 라인업이 펼치는 공연 이면의 본질 말이다. 우드스톡은 히피와 플라워 무브먼트로 대변되는 1960년대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던 페스티벌이었다. 글래스턴베리 또한 그 배경을 바탕에 두고 반핵 시민단체와 연계하며 역사를 쌓아왔다. 지금 한국의 음악 페스티벌이 만들어내고 있지 못한 부분이다. 기획 단계부터 시장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데다, 아직 관객으로부터 생성되는 자발적 문화를 기대하기에는 역사가 짧으니 탓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기획사가 아닌 행동가와 뮤지션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페스티벌이 있다면? 5월1일 노동절, 홍대 앞에서 열리는 ‘뉴타운 컬처 파티 51+’가 바로 그런 페스티벌이다. 홍대에서 열린다고 하면 클럽이나 거리를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51+가 열리는 장소는 동교동 로터리 근방의 재개발지구다. 대형건설사의 부당한 퇴거 요구를 거부하고 홀로 투쟁을 벌이는 칼국수집 두리반 자리에서 뜻있는 음악인들과 젊은 활동가들이 주말마다 공연을 열었던 게 51+의 시초였다. 그들은 노동절을 맞아 더 큰 규모의 공연을 만들어 보기로 하고 음악인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섭외에 응하여 참가한 팀들, 그리고 소문을 듣고 자발적으로 참가 의사를 밝혀온 팀들이 있었다. 평소에 정치적 메시지를 가사에 담아온 이들도 있었고, 얼핏 정치와는 무방한 음악을 해온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모인 팀이 60팀 이상. 사흘 동안 열리는 대형 페스티벌에 밀리지 않는 규모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음악인들은 지명도와 상관없이 정치와 무관한 행보를 걸어오곤 했다. 남의 이야기로 생각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정권과 상관없이 정책은 음악을 산업으로만 바라볼 뿐, 자발적인 예술로 대우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청록의 나날을 보내던 음악인들을 시민으로서 자각시킨 건 아이러니하게도 현 정부였다. 뉴타운으로 인해 가난한 음악인들의 생활공간이 속속 철거되었고, 청소년 시절을 보낸 많은 곳이 재개발의 이름으로 사라졌다. 게다가 51+가 열리는 두리반은 한국의 중요한 음악거점인 홍대다. 이미 홍대 앞 주변 곳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거나, 재개발 계획이 발표되고 있다. 정치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됐다. 많은 음악인들이 집결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51+는 이런 종류의 이벤트에서 대체로 주체를 맡아왔던 민중음악 진영의 행사가 아닌, 인디음악 진영의 축제가 됐다. 51+두리반이 있는 건물 1층뿐만 아니라 건물 전 층에서 하루종일 공연이 열린다. 꽤 시끌벅적한 날이 될 것이다.
자본의 폭력에 반대하는 음악인들의 즐거운 분노로. 틀에 박히지 않은 저항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음악으로. 이날, 한국 음악계에 또 하나의 사건이 기록되리라.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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