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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사분위의 위험한 사학분쟁조정 / 김제완

등록 2010-04-26 20:37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학비리로 임시이사가 파견되었다가 정상화를 이룬 여러 학교에 대하여 최근까지 사립학교분쟁조정위원회가 정이사를 선임하고 있다.

비리사학이 정상화되어 임시이사 체제를 청산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과거 비리 사학운영자들의 복귀를 두고 다시 심한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이를 놓고 사분위가 정이사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벌써부터 잡음이 들리고 분쟁이 재연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사분위가 과거 이사진의 추천 몫을 과반수로 하려는 데에 있다. 이는 몇몇 하급심 판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2007년에 대법원은 이른바 상지대 판결의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비리를 저지른 학교법인의 임원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행정적 제재를 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시정하기 위한 수단이 지나쳐 함부로 학교법인의 정체성까지 뒤바뀌는 단계에 이르면 위헌적 상태를 초래하는 것이 돼 허용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의 몇몇 하급심 판결 등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넘어서서 “임시이사의 선임 사유가 해소된 경우 학교법인의 자주성과 정체성을 대변할 지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종전이사 쪽에 적어도 지배구조의 틀을 변경시키지 않는 최소한(정원이 7명이면 4명)의 정식이사 추천권을 부여함이 원칙”이라고 판시했다. 이 하급심 판결의 영향을 받아 사분위는 종전이사 쪽의 정이사를 과반수로 하여 지배구조의 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비리재단이 학교에 복귀한다는 반발이 학내 구성원들부터 나올 것이 분명하다.

사립학교법의 양대 기본이념은 자주성과 공공성의 균형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사립학교의 “정체성 유지”를 지적한 것은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하급심 판결과 사분위에서 이를 사립학교의 “지배구조의 틀 유지”와 동일시한 것은 큰 오류요 비약이다. 사립학교의 정체성 유지에 과반수 지배구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립학교의 정체성, 예컨대 교육이념과 목표 등은 모두 정관을 통하여 유지되고 있는데, 정관 변경에는 이사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종전이사들이 3분의 1만 차지하고 있어도 정체성의 변경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종전이사들이 3분의 1을 차지하는 상황과 과반수의 절대적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은 크게 다르다.

사립학교 운영상의 모든 일반결의사항에까지 과거의 비리 관련 종전이사 쪽이 절대적 지배구조의 틀을 유지하는 것은 사립학교의 공공성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는 자주성이나 정체성과도 무관하다. 예컨대 학교가 건설회사를 선정하는 과정에 종전이사 쪽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해, 그 뜻을 관철하지 못하였다 해도, 이를 두고 사립학교의 정체성이 흔들렸다고 할 수는 없다.

사립학교에 대해 “지배구조”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사립학교법의 양대 이념인 자주성과 공공성 중에서 후자를 부정하거나 또는 양자의 균형을 현저히 허무는 편향된 시각에 기인한 것이다. 기업에서조차 과반수를 가지고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과반수의 절대적 지배구조는 무리수와 비리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분쟁의 소지가 여전히 남아 있는 사립학교의 경우에 법에도 없는 “지배구조의 틀”을 종전이사들에게 인정하려 한다면, 오히려 사학분쟁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정이사 선임에 있어서 사분위로서는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도 고루 반영해야 하지만, 특히 중립적인 인사들이 캐스팅보트를 가지고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분위의 균형 잡힌 시각과 공정한 결정을 촉구한다.

김제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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