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구 선임논설위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갑판으로 올라가 한 방향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여명 속에 멀리 눈 쌓인 산봉우리들이 장엄한 자태를 어슴푸레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 금강산이다.” 1998년 11월19일 아침 7시40분 관광객 877명 등 모두 1418명을 태운 현대금강호가 북한 장전항의 임시계류장에 접안했다. 분단 50여년 만의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은 이렇게 시작됐다. 육로관광이 가능해진 2003년 9월 이전에는 강원도 동해항에서 배를 타고 동해안을 멀리 돌아 장전항으로 들어갔다. 10시간 넘게 걸리는 뱃길 여행은 제법 낭만이 있었다. 물살을 가르며 배 옆을 따라오는 돌고래 떼를 볼 수도 있었고, 배 안에서는 흥겨운 전국노래자랑이 벌어지기도 했다. 금강산 관광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2008년 7월11일 새벽 관광객 박왕자씨가 피살되기까지 9년 반 넘게 지속됐다. 195만여명이 금강산의 수려한 산수를 즐겼다. 그러나 금강산은 단지 구경거리에 그치지 않았다. 이산가족들이 꿈에 그리던 부모형제를 만나 눈물바다를 이룬 곳도 금강산이었다. 군항이었던 장전항에 민간부두가 생기고, 북한 군부대가 있었던 곳에는 골프장이 들어섰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 교류·협력의 상징이었고, 남북이 평화와 신뢰를 다져가는 디딤돌이었다. 어제까지 금강산에서는 북한이 현대아산의 시설을 대부분 동결했다. 남쪽에서는 채권단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대아산과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을 논의중이다. 고 정주영 회장의 숙원사업으로 시작돼 그의 아들의 희생을 딛고 며느리가 간신히 꾸려오던 금강산 관광 사업이 좌초 위기에 몰린 셈이다. 2008년 마지막으로 봤던 금강산의 눈부신 연둣빛 신록과 기기묘묘한 형상의 만물상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오려나. 정석구 선임논설위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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