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형석 대중문화팀 기자
“기자 양반, 도대체 누구 말이 맞소?” 요즘 취재 현장에서 인사말처럼 이런 말을 듣는다. 천안함이 전투도 없이 바닷속에 가라앉은 3월26일 이후 한국 사회는 온갖 말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태껏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천안함 희생 장병 46명의 안장식은 끝났지만, 침몰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선체가 외부 타격에 의해 두 동강 났다는 의견을 내고 있으나, 그 근거나 증거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젊은 장병 46명의 생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의 얼개를 낯선 눈길로 복기해 보면, 그 전개 과정은 별로 탐탁지 않은 ‘설정’과 자꾸 연결된다. 순전히 이미지적 시각으로만 보자면, 천안함 사건은 스펙터클로 넘치는 블록버스터 영화와 비슷하다. 바다와 천안함의 잔해가 던지는 시각적 충격이 숱한 뒷담화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배의 침몰, 재난 사건은 영화나 다큐에서 매우 선호해온 소재다. 바다는 인간 공간 밖 미지의 세계이며, 육지보다 훨씬 스펙터클한 이미지에 가공할 수 있는 픽션 거리가 넘쳐난다. 천안함 사건의 경우 숱한 인명이 희생됐고, 침몰 원인은 미궁 속이고, 분단 상황에 따른 음모론, 은폐설 등이 뒤얽혀 극적인 요소가 더욱 배가된다. 미술판의 한 작가는 천안함 인양작업의 현장 생중계와 보도사진들에서 마치 스트립쇼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침몰 원인을 밝히라는 여론 앞에 국방부는 함수·함미의 파손 부위에 그물 조각을 걸치고 끌어올렸다. 처참한 상흔이 보일 듯 말 듯 한 배의 하체가 올려지자 언론은 헬기까지 동원해 파손부위를 클로즈업했다. 그물을 벗기라는 언론의 채근에 정부는 약간씩의 ‘팩트’만 풀어놓고, 결국 벗기지 않았다. 감질나게 만드는 선정적인 이미지 성찬 앞에서 억측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미지에서 억측을 끌어내고 신나게 확대재생산한 것은 조중동 보수언론이다. 천안함 사태는 우파 상업주의 언론에서 보면, 잃어버린 10년간 녹슬었던 분단 안보 메커니즘이 실로 오랜만에 관능적으로 작동한 ‘쾌거’였다. 천안함의 강력한 금속성 선체와 푸른 바다가 던지는 시각적 힘에 힘입어 우파 언론의 안보 장사는 물 만난 고기처럼 흥이 오른다. 지방선거 목전에 애국주의와 순국장병들의 영웅신화가 나오더니, 이제는 국민들의 정신 각성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천안함 사건이 영구미제가 될 경우 가장 반색할 쪽은 우파 언론일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천안함 비극을 안보 살풀이판에 전가의 보도처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민망스럽긴 하지만, 이 비극적 사건을 수구보수 언론의 몸풀이에 맞춤한 일종의 ‘분단 블록버스터’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블록버스터의 논리는 단순하다. 선과 악, 죽는 자와 죽이는 자, 위험한 곳과 위험하지 않은 곳… 극단적 이분법이 시각적으로 관철된다. 참혹한 천안함 사진들은 그 블록버스터 정치를 주입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천안함 현장과 무관하다는 사실 때문에 대다수의 우리들은 지금 사실 그 이미지를 그저 오락거리로 즐기고 있는 건 아닐까. 젊은 장병들의 영혼을 집어삼킨 이 분단의 블록버스터가 앞으로도 망령처럼 우리 주변을 떠돌 것을 생각하면. 미국의 지성이던 평론가 수전 손태그는 명저 <타인의 고통>에서 전쟁 사진을 그저 소비하는 대중에게 이런 충고를 던진 바 있다. “고통받는 이들이 우리와 같은 지도상에 존재하며, 우리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하라…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과 동정만 베푸는 것은 제발 그만하기를.” 노형석 대중문화팀 기자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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