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아이들에겐 맘껏 놀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학교 성적과는 무관한 교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어린이잡지사로부터 강연 부탁을 받았다. 내가 부탁받은 강연 제목은 ‘진짜 생태가 뭐야?’다. 그동안 적잖은 강연을 했지만 이번처럼 부담스러운 때는 없었다. 내가 만날 대상들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아이들에게 경어를 쓸지 편하게 말할지를 허락받을 것이다. 그런 뒤 ‘진짜 생태생각’을 말하기 위해서 ‘가짜 생태생각’을 말할 작정이다. 가짜 생태생각은 뭣일까? 그것은 생태위기를 ‘환경문제’라고 표현하는 데에서 느낄 수 있다고 말할 참이다. ‘생태’란 ‘생물이 살아가는 모양이나 생활상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신비로운 생태계의 일원일 뿐이라는 것을 잠시도 잊지 않는 겸손한 태도다. ‘환경’이라는 말은 이 거대한 생명잔치판에서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것을 밝히고, 잘못된 말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해야겠다. 이어서 나는 피할 수 없이 작금의 생태위기에 대해 말하게 될 것이다. 자연을 단지 자원가치로만 본 금세기 인류가 저지른 인간활동의 결과 자연의 역습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자연은 여러 방식으로 비명을 지르며 경고를 했지만,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마침내 참다못한 자연의 역습이 시작되었는데, 끔찍한 일은 이 역습이 돌이킬 수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 말하자면 녹기 시작한 빙하가 그 속도를 멈출 수 없다는 것, 확대되는 사막이 나무 몇 그루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 바다가 쉼없이 만들어내는 메탄가스, 잦은 지진과 해일, 춥지 않은 겨울, 덥지 않은 여름, 사라지는 토착민들과 언어들, 하루에도 수백종씩 멸종하는 생물종들, 날로 약해지는 생명의 면역성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어린이들을 만나는 고통이 여기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구를 살리는 50가지 방법’ 등에 적힌 목록을 실천하는 것으로 해결될까? 죽어가는 것은 생태계이지 정작 지구는 끄떡 않는데도 ‘지구를 살린다’는 오만한 말을 또 해야 옳을까? 우리는 비록 자연의 힘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지만 지금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이 무서운 자연의 역습을 완화하거나 늦출 수 있다고, 실현 불가능한 희망이라도 품어보자고 말할 때 나는 슬플 것이다. 그러나 그 노력 속에서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겸손을 회복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그 자체로 전 세대 사람들이 겪어보지 못한 새롭고 놀라운 체험이 될 것인즉, 반드시 어린이 여러분은 우리와는 다른 사회적·인간적 성숙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할 생각이다. 비록 확신에 찬 목소리는 아니겠지만, 간절한 얼굴로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사랑이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어린이들에게 넉넉하게 있는 경탄하는 능력이라는 것을. 이 두 가지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강조할 생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실내온도를 줄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강에 난폭하게 손을 댄 뒤 겨우 자전거길이나 얻으려는 작금의 이 어처구니없고 우스꽝스러운 폭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옳을까. 그것이 이 눈부신 오월에 내가 맞닥뜨린 심각한 고민이다. 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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