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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화칼럼]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강 / 도종환

등록 2010-05-14 22:40

도종환 시인
도종환 시인




지난달에 환경운동연합에서 자기 단체를 홍보하는 라디오 광고를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다. 20초짜리 짧은 광고였다. 무료로 하는 라디오 광고지만 기분 좋게 끝내고 돌아왔다. 며칠 뒤 다시 전화가 왔다. 선관위에서 선거법 위반이라 안 된다고 하니 한 번만 더 녹음을 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4대강 사업으로 흰수마자, 단양쑥부쟁이, 재두루미 이 소중한 생명들은 다 어디로 가게 될까요?’ 하는 정도의 멘트였는데도 ‘4대강’이란 말이 들어가서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었다.

울상이 된 담당자들과 함께 다시 녹음을 하면서 4대강 대신 ‘강’이라는 말로 바꾸어 녹음을 했다. 그런데 혹시 모르니 강을 봄으로 바꾸어 한번만 더 녹음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강이란 말도 안 된다고 할지 모르니 그러면 봄으로 제출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정부는 티브이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로 홍보를 해도 합법이고, 환경운동단체는 후원회원이 되어 달라는 홍보도 4대강이란 말이 들어가면 불법이 되는 쩨쩨한 시대가 되었다.

저항의 글쓰기를 하겠다는 작가들과 저항의 예술운동에 나서겠다는 예술인들이 공사가 진행되는 강을 직접 가보자고 해서 갔다가 나는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한 마리 거대한 짐승을 보았다. 아직 살아 있는 생명에게 칼을 들이대 껍질을 벗기고 살점을 중장비의 삽날로 찍어대고 있는 것 같았다. 야만의 짐승들이 몰려와 한 생명의 몸을 마구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의 몸은 대부분 물로 채워져 있다. 강과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우리의 생명을 지탱해 주는 물이다. 산과 숲에서 생성되는 바람은 우리의 몸 안을 채우고 살아 숨쉬게 하는 것들이다. 흙과 물에서 얻은 것들을 먹고 열과 힘을 얻으며 자연의 힘에 의해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는 흙의 기운, 물의 기운이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다음 불의 기운이 사라지며 천천히 몸이 식고, 밖으로 나간 바람의 기운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능행 스님은 <이 순간>이란 책에서 말씀하신다. 흙, 물, 불, 바람이 모여 생명이 되고 그게 흩어져 목숨이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을 내 몸의 일부라고 여기는 것이다.

남생이는 모래톱이 있어야 그곳을 파고 알을 낳는다. 자갈이 강바닥에 모여 있어야 그곳을 빠르게 흘러가는 물로 인해 풍부한 산소를 얻고 살아가는 물고기도 있다. 미호종개는 가는 모래에 붙어 사는 조류를 먹고 살고, 꾸구리는 자갈에 붙은 조류를 먹으며 산다. 얕은 물이 있어야 사는 물고기도 있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수온 때문에 상류나 하류로 이동하며 사는 물고기도 있다. 강변에 바위도 있고 숨을 곳도 있어야 수달이 살고, 조개껍질과 풀이 있어야 흰목물떼새 같은 조류들이 둥지를 만들고 번식을 할 수 있다.

중장비로 밀어붙이면서 보를 만들고 시멘트로 덮어버리면 강에 살던 수많은 생명들은 멸종하고 말 것이다. 물고기와 새와 파충류와 꽃들이 사라지고 난 뒤 대기의 수분도 낮아지고 안개가 빈번해지는 동안 과일과 농작물도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이다. 그 공기, 그 물, 그 농작물을 먹고 사는 우리의 생명도 역시 초췌해져 갈 것이다. 그러나 강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함께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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