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
# 개의 진화를 놓고 논쟁이 있었다. 늑대가 개의 조상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의한 의도적 사육이 우선이냐, 늑대들의 자발적 가축화가 먼저냐는 의견이 엇갈렸다. 얼마 전까지는 전자가 우세했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늑대 새끼를 사람이 기르면서 모양과 성품에 변환이 일어났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연구결과를 보면 후자 쪽으로 기운다. 움막 주변을 알짱거리며 쓰레기 더미나 퇴비를 뒤적이는 늑대들이 먼저 있었고, 이렇게 스스로 변해버린 것들을 인간이 선택했을 뿐이라는 것이다.(리처드 도킨스 <지상 최대의 쇼>) 검찰의 변화를 놓고 논쟁이 있었다. 권력이 검찰을 길들인 것인지, 아니면 검찰이 알아서 긴 것인지의 문제다. 그동안은 전자가 상식이고 통설이었다. 그러나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놓고는 이설이 제기됐다. 한나라당의 한 실세 의원은 “애초 검찰이 먼저 수사계획을 청와대에 보고했고, 청와대는 ‘선거가 다가오고 있으니 확실하지 않으면 중단하라’고 말렸으나, 검찰 수사라인이 ‘그럼 우리 책임하에 하겠으니 청와대는 간섭 말라’며 강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의 책임 떠넘기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권력의 개입 못지않게 검찰의 자발성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 온 것도 분명해 보인다. # 늑대들은 애초 무리지어 사냥을 하고, 신선한 살코기를 먹었다. 사람과 같이 살면서 육식성은 잡식성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주변에 널려있는 건 뭐든지 입을 댔다. 상하거나 입맛이 맞지 않아도 생존을 위해 닥치는 대로 먹었다. 검사들이 스폰서 문화에 적응한 것도 ‘생존’만큼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을 것이다. 수사비에 쪼들리다 보니 고향 선배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선배 검사들이 술집에 데리고 가는데 빠지는 건 중뿔나다. 가끔씩은 피의자를 인간적으로 배려해준 데 대한 성의표시에 익숙하게도 될 것이다. 개가 편하게 먹이를 공급받다 보니, 주둥이 길이는 짧아지고 두개골은 둥그레지며 이빨은 작아졌다. 스폰서 문화에 젖다 보니, 김준규 검찰총장의 말마따나 “검찰만큼 깨끗한 곳이 어디 있느냐”는 당당함이 유전자에 스며든다. # 인간은 늑대를 길들여 최초의 개를 만든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품종을 개량했다. 독자적인 종만도 2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 가운데 핏불(Pit Bull)이라는 종의 변천사가 눈에 띈다. 유럽에서는 개로 하여금 소를 물어 죽이도록 하는 ‘소물기’가 수백년 동안 성행한 적이 있다. 죽음을 개의치 않는 강하고 끈질긴 공격본능이 개들에게 요구됐고, 핏불이 탄생했다. 소의 몸에 구멍이 날 정도로 물어뜯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1835년 이 경기가 금지된 이후, 핏불은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 서부개척기 농가에서 집을 지키는 것으로 역할이 줄어들었고, 그나마 산업화가 이뤄지자 요즘은 구조견이나 치료견 심지어 애완견으로 길러지고 있다. 정부 여당을 중심으로 검찰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나 상설특검 등이 논의되고 있는데, 한마디로 검찰 힘을 좀 빼자는 얘기다. 검찰의 넘치는 힘과 투지가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수사가 후보등록일에도 진행되자, 한나라당 안에서는 “검찰이 한명숙 선거대책위”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또 한 의원은 “언제 주인을 물지 몰라서…”라고 털어놓았다. 검찰은 이런 시도에 온몸으로 맞서고 있지만, 천지에 고립무원이다. 어쩌면 검찰이 권력의 울타리 안을 기웃거렸을 때부터 예정된 순서였는지도 모른다.
김의겸 정치부문 선임기자kyu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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