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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한글혁명은 계속되고 있다 / 최동식

등록 2010-05-19 20:32

최동식 고려대 명예교수
최동식 고려대 명예교수




10년 전 유럽에서 1000~1999년의 천년 역사상 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100명 뽑아 인기투표(?) 고득점 순서대로 발표한 적이 있다.

그들이 가장 고마운 어른으로 뽑은 분은 영웅도 예술가도 과학자도 아닌 인쇄업자 구텐베르크였다. 라틴어로 쓰인 성경필사본에서 독일어로 인쇄된 성경을 찍어냄으로써 귀족·신부들만의 기독교에서 평민들의 기독교로 바뀌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근대화를 불러온 종교혁명, 정치혁명, 산업혁명은 인쇄혁명에 의해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인기투표를 했다면 단연 세종대왕이 으뜸으로 뽑혔으리라. 이순신, 최영, 이성계, 이퇴계, 이율곡, 최세진, 문익점, 최익현, 강우규, 안중근, 윤봉길, 김구, 이승만의 업적은 한사람의 것이고, 세종대왕은 사육신과 집현전, 서얼 출신 발명가나 과학자들, 명재상들의 삶을 다 모아 이끌어간 문화혁명의 군주였다.

이성계, 이방원과는 달리 ‘역성혁명’의 군주가 아닌 ‘문화혁명’의 군주가 된 세종대왕의 공로, 특히 훈민정음 즉 한글의 창제와 반포, 금속활판 인쇄, 서책의 보급을 한글로 하였다는 공로를 기려야 한다.

일제 때 빼앗겼던 나라와 나라말, 나라글을 찾는 작업은 1945~1948년에 이루어졌다. <글자의 혁명> <우리말본> <한글갈> 같은 전문서적의 출간이 그것이다. 한글 가로쓰기, 민주주의에 입각한 초등학교 교과서도 가장 커다란 교육혁명이었다.

<새벗>과 <소년세계>, <학원>에 이어 나타난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은 잡지 혁명의 완결이었다.


해방 전후의 신문으로 조선, 동아, 경향, 한국, 중앙 등 신문이 있었지만 <한겨레>가 한글 가로글씨 제호와 한글 가로쓰기로 판을 짜면서 신문혁명은 시작됐다. 그로 인해 모든 신문과 방송까지 언론혁명을 이룩해 가는 과정에 있다 하겠다.

특히 정보화시대, 정보산업 경쟁 시기의 한글과 우리말을 통한 발전은 통일 뒤 한겨레가 한데 뭉쳐 잘살 수 있게 하는 수단과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한겨레>가 주도하는 신문혁명·언론혁명은 한나라를 만들고 나서도 오랫동안 한겨레가 함께 잘살기 위해 그 소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라틴어 없이 학문이 가능할까’란 의구심을 품던 옛 서양문명은 ‘한자 없이 문화란 불가능하다’란 동양의 몇 나라에게 웃으면서 한 수 가르쳐 주고 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타난 전자계산기 즉 컴퓨터와 텔레비전에 이어, 인터넷이라는 방식의 정보처리 및 정보전달 체계가 나타나면서 둘의 통합이랄까 서로 돕는 현상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확 바꿔 놓았다. 이때 사람과 기계의 첫 소통이 글쇠판 즉 키보드의 한/영 글쇠를 누르는 행위로 시작된다.

이 모든 작업을 우리는 한글 24자로 하고, 중국은 영어 알파벳을 통해, 일본은 50음을 통해 한자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 복잡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한자를 쓰지 않아도 불편함이 없고, 중국과 일본은 한자를 버릴 수 없는 딱한 처지에 놓여 있다. 그래서 중국은 간체를 만들었고 일본은 약자를 쓰고 있는데, 우리 겨레는 한글을 쓰고 중국 글자 번체(번거로운 글자)는 역사나 옛 학문 연구를 위해 전문 학자들에게만 가르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어느 섬에선가 한글을 받아들였듯이 대만이나 대마도(쓰시마섬)에서도 한글을 받아들이겠다면 언제나 도와줄 준비는 되어 있다.

한겨레의 한글에서 온누리의 한글로 번져갈 새천년을 맞아 <한겨레> 신문의 창간 22돌을 축하하고 세종대왕 탄생 613년(음력 2010년 4월10일)을 기리면서 앞으로의 우리나라 한겨레의 멋진 삶을 꿈꿔본다.

최동식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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